'가가', 그 짧은 말에 담긴 한숨과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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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명숙(57·사진)이 네 번째 소설집 '조금씩 도둑'을 냈다. 소설집 '댄싱맘'이후 3년 만이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고단한 삶 보듬은 단편 9편
APEC 시위·세월호 아픔 담아

'러닝 맨' '조금씩 도둑' 등 소설집에 담은 9편의 단편엔 고단한 변두리 인생을 사는 이들의 상처와 아픔이 오롯이 녹아 있다.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렸던 부산의 하루를 담은 '가가의 토요일'부터 2014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10년 후를 그린 '점심의 종류'까지. 그가 풀어낸 시대의 스펙트럼이 폭넓다.

조금씩 도둑/조명숙

'가가의 토요일'은 '가가'라는 짧은 말에 우려와 한숨, 애절함과 기원까지 담아내는 장애인 가가의 어느 특별한 토요일 이야기다.

1987년 6월 '가가'만으로도 충분히 말이 통하던 뭉클한 세상을 경험했던 가가는 닫혀 있던 소리의 세계가 18년 만에 다시 열리자 'APEC 반대' 시위 대열에 망설임 없이 몸을 싣는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외침 한가운데서 홀로 '가가'에 반대하며 '가가'를 외친다.

부산은행 앞 모퉁이에서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소시민 가가의 눈에 비친 소소한 일상을 세계화 시대 거시적 삶과 연결해 담담하게 풀어간 단편. 그의 높고 낮은, 때론 짧고 결연한 '가가'를 따라가다 보면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점심의 종류'는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고교생 딸을 잃은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삶을 흘려보내는 엄마의 이야기다.

트라우마의 약은 세월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유미 취직하면 엄마 청소일 그만둘게.' 아이와의 약속은 영영 지킬 수 없게 됐고, 엄마는 여전히 빌딩 청소를 하고 점심을 우겨넣는다. 밥을 먹는 건 '아직 기억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결국 이민을 선택한 여동생. 소설은 대한민국의 현실이 '망각'하거나 '망명'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만큼 지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에게 '소설은 언제나 오래된 과거'였다. 저장된 기억들은 실체가 흐릿해질 때까지 내버려둬야 제대로 '왜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그렇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10년 쯤 지난 뒤에는 여러 방식으로 유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이 최소한이나마 치유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라며 "이처럼 섣부르게 쓰려고 덤벼드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강승아 선임기자 s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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