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하천 20년, 방향 잃은 물길-1부] 2.생태복원한다던 그 하천, 이젠 수해복구한다며 시멘트 '콸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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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발생한 홍수피해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송정천의 물길과 둔치가 마구 파헤쳐 지고 있다. 박진국 기자 gook72@

지난해 8월 폭우 후 수해복구 한창 기장군·금정구 등 지자체 하천마다 수해 막는다며 둔치 깎고 콘크리트 장마 전까지 배정된 예산 소진하려 자문이나 의견 반영 없이 과한 공사

지난해 8월 25일. 부산에는 시간당 최고 130㎜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특히 하천가 주변은 물이 범람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그런데, 이날 폭우 이후 부산의 하천에는 더 큰 재앙이 찾아왔다. 부산시와 기초지자체들은 '수해복구'라는 명분으로 하천에 겨우 싹트기 시작한 생태를 무자비하게 짓밟기 시작한 것이다.

■곳곳에서 파헤치고, 시멘트 바르고…

최근 본보 특별취재팀이 찾은 부산 기장군, 금정구 사이 송정천과 수영강 상류 합류지점은 한눈에 봐도 참혹했다. 하천 안에서는 물 빠짐을 좋게 하기 위해 저수로를 'V자' 형태로 파내고, 호안 침식을 막으려고 시멘트로 만든 타일을 붙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생태 전문가들은 저수로가 급격한 경사를 이루면 물을 저장하기 어려워 생명이 살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호안을 시멘트로 덮어 버리면 하천과 호안, 저수부지 사이의 생태계 순환이 단절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수영강 상류 두구교에서도 처참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침식을 막기 위해 커다란 돌로 호안을 둘러쌓기 시작했다. 굴착기는 하천 폭을 넓히기 위해 저수로와 둔치를 마구 파헤쳤다. 하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자 한물교, 신천교, 용두교 일대에서도 비슷한 공사가 목격됐다. 한때 둔치에 풍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자연습지와 버들 군락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극은 수영강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장군 철마천과 좌광천도 생태가 거덜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파헤쳐졌다. 금정구 청룡동 온천천 최상류 청룡2호교 인근 바닥에는 커다란 바위가 깔리고 그 사이로 콘크리트가 메워졌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주기재 교수는 "온천천 상류는 하상폭이 좁은 데다 경사도가 심한데, 구청이 수해 방지를 위해 콘크리트를 바른 것 같다"고 말했다.

■생태 외칠 땐 언제고…

부산시가 지난해 발생한 하천변 비 피해 복구를 위해 쏟아 붓는 국·시비는 총 69곳, 2천157억 원. 부산시가 예산을 구·군으로 내려 보내고, 해당 지역 구·군이 수해복구 공사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속전속결로 하천 바닥을 파헤치거나 둔치에 시멘트를 바르는 이른바 '강성 호안'을 구축하는 등 생태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지금까지 애써 가꿔온 생태하천을 무위로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바닥이 파헤쳐지고 있는 수영강 상류 신천교~송정천 합류지점 3.5㎞ 구간은 부산시가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예산 35억 7천만 원을 투입해 생태복원 사업을 완료한 지역이다.

또 이와 비슷한 수해복구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회동수원지~동천교 2.8㎞ 구간도 부산시가 지난 2012년 1월부터 사업비 82억 원을 들여 생태복원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부산시의 무원칙, 무철학 하천 정책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장마가 시작되는 6월 전까지 수해복구를 마치기 위해 공사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면서 "수해로 제방이 또 파괴되면 안 되기 때문에 강성 호안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부산시가 정해진 기간 안에 배정된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시급한 복구 작업 외에도 생태계까지 파괴하는 과도한 공사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수해복구의 특성상 공사가 긴급하게 이뤄지다보니 부산시가 환경단체, 학계, 주민들의 의견 반영에도 소홀하다는 것이다.

■과도한 친수 시설, 피해의 악순환

우레탄, 탄성포장, 보도블록, 경관조명, 체력단련기구…. 동래구청이 지난해 비 피해를 입은 동래지역 온천천과 수영강변 시설물 복구 계획에 포함된 항목들이다.

이들 시설을 복구하는 데 투입되는 예산은 5억 3천800만 원가량. 하천마다 들어선 친수 시설은 지난해 수해로 복구해야할 대상에 어김없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환경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서도 부산시가 생태하천에 대한 철학이 없음을 지적한다.

대천천네트워크 강호열 사무처장은 "하천의 생태는 뒷전이고 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 아니겠나"며 꼬집었다.

특별취재팀 riv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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