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이루려면 이처럼 소박할 각오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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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치겠다.'

수니파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가 그들을 열받게 한 대상에게 날린 경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섬찟한 말을 뱉은 이는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었다. 그는 대학이 추진 중인 학제 개편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이런 이메일을 날렸고 막말 파문이 일자 보직 사퇴했다.

우루과이 국민들의 사랑받은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
청빈한 삶 속 사회 개혁 펼쳐
'최고 자산은 행복' 철학 실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와 '성완종 리스트'로 소용돌이치는 정국을 뒤로 하고, 급할 것 없어 보이는 남미 4개국 순방을 서둘러 떠났다. 거짓말을 되풀이하던 총리는 페루에 있는 대통령을 깨우지 않기 위해 한밤중에 온 국민을 깨우는 사의 표명을 했다.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 책임을 또 잊은 채 '안타깝다'는 예의 유체이탈 화법을 페루에서 날린다.

이 소용돌이의 와중에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물 건너갈 듯하자 행복해진 한 사람. 전임 대통령 MB는 대구까지 '놀러 가' 들뜬 목소리로 외친다. "카페라테는 내가 쏠게."

자본주의도, 민주주의도 망가진 시대. 대통령의 책무에 앞서 인간의 도리부터 묻고 싶은 국민에게 남의 나라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전임 대통령이 무슨 위안이 될까 싶지만 그가 던지는 울림은 만만치 않다.

많은 이들이 다시는 그와 같은 지도자를 만날 수 없을 거라 아쉬워하는 대통령.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2월 28일 퇴임했다. 52%의 지지율로 2009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65%라는 경이로운 지지율을 유지한 채 환호 속에 임기를 마쳤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는 '가장 낮은 곳에서 국민과 함께 한 대통령'이 들려주는 인생과 정치, 참된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는 '체 게바라 이후 가장 위대한 남미 지도자'로 불리는 무히카 전 대통령이 우루과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퇴임 후 농부로 돌아간 무히카는 가난한 게 아니라 청빈할 뿐이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데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간소하고 여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남미에서 가장 작은 나라 우루과이는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돼 있고, 행정 투명성과 교육 환경 치안 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강소국이다. 우루과이는 무히카 재임 기간 중 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경제 급성장을 이루었고, 남미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그러나 오늘날 우루과이가 누리는 안정적인 민주주의는 많은 이들의 처절한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호세 무히카는 우루과이가 독재 정권 하에 있던 1970년대 도시 게릴라로 하수구를 누비며 무장투쟁을 벌이다 여섯 발의 총상을 입었고 사경을 헤매다 기적처럼 살아났다. 땅굴을 통해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했지만 결국 다시 붙잡혀 살인적인 고문을 받았고, 13년간이나 독방에 수감돼 있었다. 앙심을 품을 만도 했지만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누구도 '손보지 않았다.'

더 독하게 되갚기에 철저한 누군가에게 그가 던지는 교훈은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히카는 독방에서 보냈던 고독의 세월이 자신을 더 사색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온갖 인간군상의 견본을 모아놓은 감옥'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독방에서 책 읽기가 금지됐던 처음 7년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다음 6년 동안엔 수많은 책을 읽었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그는 여전히 책을 가까이 했다.

무히카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란 걸 아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정치의 목적은 인간이며 인간의 기본적 요구를 해결하는 것이 세상 모든 통치자의 목표여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28년 된 낡은 자동차를 끌고 월급의 90%를 기부하면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행복이라는 철학을 실천한 대통령. 우루과이는 집권당 중도좌파연합 소속 의원들 역시 월급의 50%를 기부하고 있다.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는 정치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무히카는 소탈하고 파격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진보 행정가로서 일관된 철학과 뚝심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평가대로 '무히카는 재임 5년 동안 사회개혁은 이루고 자신의 소박한 삶은 그대로 유지했다.'

"정치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지적인 정직성이다. 지적으로 정직하지 않다면 나머지는 아무 소용이 없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는 거리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지나치게 받들어 모시는 풍조를 없애야 한다" "교육은 계층 간 분리 도구로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 민주주의는 분리할 수 없다" "세계의 힘 있는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면 다음 선거에서 이길까'만 걱정하면서 리더십을 놓치고 있다" 그가 남긴 빛나는 어록들은 오래 곱씹을 만하다.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지음/송병선·김용호 옮김/21세기 북스/400쪽/1만 6천 원.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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