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의 세상 속으로] '국제시장' 그리고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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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국가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전 세계가 시끌벅적하다. 어쩌면 관점 차이로 으르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인은 다름 아닌 영화였다. 그것도 엄청난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이어서 강도가 더하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말 개봉된 '국제시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특히 덕수와 아내의 국기 하강식 장면을 놓고 이념적 갈등이 있었다. 이 갈등도 밑을 파헤쳐 보면 결국 국가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미국에선 올해 초 상영한 '아메리칸 스나이퍼' 때문에 논란이 치열했다. 이 영화는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는 공식적으로 160명,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255명의 적을 사살한 미국 최다 저격 기록 보유자이다. 명배우 출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메가폰을 잡아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를 놓고 한쪽에선 저격수의 애국심을 강조했다. 국가를 지킨 영웅이란 주장도 나왔다. 반대편에선 '저격수는 영웅이 아니다. 우리에게 애국심을 강요하지 마라'며 반전 정신을 내세웠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 상영
'국가' 의미 묻는 영화 잇따라
보수·진보 진영 논란도 치열

성완종 리스트, 세월호 1주기
권력 타락·무책임 민낯 노정
국민 위한 정부 역할 명심해야


러시아에선 현재 우리나라에서 상영 중인 '리바이어던'을 두고 말이 많다. 러시아 소도시의 부패한 시장이 한 시민의 권리를 철저하게 짓밟는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지난해 칸에서 각본상, 올해 골든글러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명작이다. 이 영화가 사실상 러시아 정부의 부패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찬반 논쟁이 불붙었다. 러시아 정부는 '국가의 결속을 해치고 있다'며 검열제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로, 최강의 존재로 묘사된다. 영국 근대 철학의 입안자 토머스 홉스는 1651년 '리바이어던'을 발간했다. 여기서 그는 리바이어던처럼 강한 국가의 필요성을 말한다. 인간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해결하려는 생각이었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평화라는 공동선을 달성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국가는 개인 간의 계약, 또는 합의 등에 의한 부산물이란 발상이었다.

하지만 영화 '리바이어던'에선 홉스가 그토록 바랐던 정의의 수호자 리바이어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자신의 비리 파일을 들고 온 변호사를 본 시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다. 시장 선거를 꼭 1년 남겨둔 시기에 대형 악재가 터지면 그의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질 상황이었다. 시장은 자신이 임명한 경찰, 검찰, 판사 수뇌부를 부랴부랴 소집해 대책을 찾는다. 별 뾰족한 방책이 안 나오자 그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내가 낙선하면 너희도 끝장"이라고. 이처럼 시장을 정점으로 공권력은 물론 교회 세력까지 철옹성같이 결탁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장면을 영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독 즈비아긴체프는 "어느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비극이 아니다"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듯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타락한 권력의 민낯'이 통째로 드러나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후 메모를 통해 그 흉한 모습이 폭로됐다. 총선이란 선거를 1년 남겨뒀다는 우연한 일치가 묘하다. 이완구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태세다. 정경유착에 돈맥과 인맥이 판치는 권력층의 치부가 탄로 나고 말았다. 위임받은 국가 권력을 사적 이익의 방편으로 악용한 실태가 백일하에 노출된 것이다. 그들의 짬짜미에 희생당한 사회적 약자들이 지금 어디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폭압적 권력정치는 사라졌지만, 금권을 매개로 한 통제되지 않은 권력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홉스의 저작 가운데 '베헤모스'란 책도 있다. 역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괴수의 이름을 딴 제목이다. 그는 베헤모스를 무질서, 공격성, 무정부 상태의 온상으로 봤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비롯되는 혼란이다. 이런 베헤모스를 억압하는 게 리바이어던의 존재 이유다. 이 역할 상실의 극단적 사례를 '통곡의 바다'로 변한 지중해에서 목도할 수 있다. 아프리카·중동의 난민선이 침몰하면서 19, 20일 양일간 사상자가 1천 명에 육박하고 있다. 연간으론 수천 명이나 수장되는 참상이다. 모두 국가 기능 상실, 즉 리바이어던의 타락으로 인한 분쟁과 빈곤을 피해 유럽으로 향하던 난민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1년 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자연히 오버랩된다. 한국호는 그때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이제 다시 절절한 심정으로 근원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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