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사진으로 읽는 역사] 16. 한국 최초 박람회 '일한상품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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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국가 우월성 과시 경제적 침탈의 장으로 활용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엑스포(EXPO)는 역사적으로 '박람회'라 불리며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제국주의 국가의 우월성과 식민주의 야욕을 드러내는 정치 선전장으로 기능했다. 대체로 제국주의 시기의 박람회는 '만국'을 표방하며 세계에 개최국의 국력을 뽐내는 한편, 자국민에게는 문명국의 자부심과 식민지 경영의 유용성을 선전하는 장이었다.

나아가 부강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식민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던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식민지와 식민지 원주민의 전시는 줄곧 박람회의 중요한 전시 주제 중 하나였다. 반인종적이고 비인간적인 식민지와 식민지민의 전시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라지고 대신 박람회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탈을 벗고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경연장으로 탈바꿈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엑스포다.

한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박람회는 1907년 통감부가 주최한 '경성박람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06년 이미 부산에는 위 엽서 사진에 나오는 '일한상품박람회'가 민간 차원이지만 한일 양국 공동으로 개최되었다. 일본은 정치 외교적인 침탈과 더불어 지속적인 경제적 침탈도 자행했다. 한국의 쌀과 원료를 값싸게 수입하는 한편, 이를 통해 만든 일본자본주의상품을 한국에 팔기 위한 경제적 침탈은 한국의 주요한 개항장과 개시장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일본의 상품을 진열하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설립한 상품진열관이었다. 1905년 부산에도 사진 속의 원뿔형의 서양식 건물의 상품진열관이 설립되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한국과 공동으로 양국의 상품을 진열 소개하는 '일한상품박람회'를 개최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한일 양국의 우수한 상품을 진열, 전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실상 한국 상품의 진열은 없었다. 대신 오사카의 새롭고 근대적인 상품들만이 전시되었다. 결국 부산에서 한국 최초로 개최된 '일한상품박람회' 역시 제국주의 국가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보호국 상태의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경제적 침탈의 장이었던 것이다. 

전성현

동아대 석당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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