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하천 20년, 방향 잃은 물길] 생태하천사업, 되레 강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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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서구 지사동 지사천 하류에 쓰레기와 자갈이 쌓여 있고 회색빛 물이 흐르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지사천(길이 9.2㎞)은 인근 굴암산 계곡에서 시작, 부산 강서구를 관통해 낙동강으로 향한다. 서낙동강의 제1 지류이자, 버들치와 모치 등 1급수 어종 서식지였으며, 여름이면 주민들이 멱을 감던 휴식처였다.

하지만 지금의 지사천은 생명이 사라진 '죽음의 하천'이다. 2003년 생태하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공사가 시작된 지 불과 12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지사천 '죽음의 하천' 전락
복개 탓 개천·시냇물 덮이고
굽이치던 'S자', 직선 정비
사실상 자연하천 사라져
하류엔 기름·오염물질 둥둥
수변 식물 흔적조차 없어

부산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천350억 원을 투입해 부산지사과학단지를 만들면서, 2003년부터 지사천을 정비했다. 굴뚝 없는 산단과 배후 주거지에 어울리게 생태하천으로 개발한다고 했다.

'생태'와 '개발'이라는 모순적 단어가 암시하듯, 결과는 참혹했다. 본보 취재팀과 자문단이 지난 3월부터 3차례 현장답사한 결과 지사천은 생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빈 하천'으로 드러났다.

근원부터 망가졌다. 지사천의 근원인 개천과 시냇물은 사라졌다. 상류 1㎞ 구간이 복개되면서, 개천은 덮이고 그 밑으로 지하 배수로가 생겼다. 지난 2일 답사 당시 지하 배수로가 끝나는 지점에 기름띠가 흘렀다. 기름은 복개구간을 따라 유입된 것으로 보였다. 배수로 출구 주변은 온갖 쓰레기가 쌓여 있어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S'자로 굽이치던 강의 모습도 직선으로 변했다. 정비 기간 중 무려 1.8㎞ 구간을 직강화한 것이다. 직선 하천은 오염물질의 외부 접촉량이 줄고, 생물의 다양성도 떨어진다. 이런 직강화는 땅의 효율성을 높여 집과 공장을 더 짓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파트와 도로가 하천과 달라붙어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하류엔 기름과 오염물질이 소용돌이치며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우교에 이르러서는 희석된 시멘트가 넓게 퍼져 물과 시멘트를 반죽한 듯했다. 인근 야산의 채석장과 시멘트 공장 찌꺼기들이 배수관을 통해 유입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하천에서 볼 수 있는 수변 식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닥의 돌을 들춰 보아도 유충 같은 저서생물군조차도 없었다. 생명그물 이준경 정책실장은 "수년간 여러 번 생태 환경 조사를 했지만 한 번도 물고기가 발견된 적이 없었다"며 "생태하천 개발은 생명을 죽여 공(空)하천으로 만드는 공사였다"고 말했다.

주변 인프라도 엉성했다. 2011년 지사천은 '하천판 4대강 사업'이라는 '고향의 강' 사업지로 선정됐다. 4.2㎞ 구간에 98억 원을 투입, 하천을 따라 생태 공원을 만든다고 했다. 현재 2단계 공사가 진행 중인데, 하천 양옆으로 2m 너비의 시멘트길을 조성하는 수준이다. 수변 녹지를 엎고 시멘트길과 자전거길을 놓고 있는 꼴이다.

대천천네트워크 강호열 사무처장은 "하천 옆에 시멘트 공사판을 벌이는 건 몰상식한 행위"라며 "더 큰 문제는 생태를 파괴하는 생태하천 사업이 부산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river@busan.com


특별취재팀 : 박진국, 김백상, 황석하,이대진, 장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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