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자살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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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준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성완종 리스트'의 유령이 한국 정치권을 떠돌고 있다. 한국 정치권의 실세들, 즉 검찰과 청와대, 친이와 친박,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동맹을 맺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등 현 정권의 실세 정치인 8명의 이름과 돈 액수가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메모에 적힌 8인 중 4명이 PK 출신이다.

서양에서는 도망갈 수 없는 상황
스스로 끝내는 이기적 행위

동양에서는 억울함 호소하고
결백 밝히는 수단으로 여겨져

한국 사회 뒤흔드는 '성완종 리스트'
자살이 내포한 문화적 의미 살펴야


'성완종 리스트'는 집권 3년 차를 맞은 박근혜 정권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이전 정권과 가장 차별되는 부분으로 '도덕성'을 내세웠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로 숨 가쁜 5년을 보냈다면, 박근혜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해 공정하고 투명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즉, 대한민국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집권 철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박근혜정부는 스스로 비정상임을 증명하게 되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검찰총장도 "한 점 머뭇거림 없이 원칙대로 수사하라"고 수사팀에 주문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리스트에 오른 살아 있는 자들은 "황당하다"며 금품 수수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죽은 자가 말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를 추론해 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동서양에서 자살이 내포하는 문화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살은 기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여겨져 왔다. 기독교 문명에서 인간의 몸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살은 큰 사회적 금기로 간주됐다. 유교문화권에서도 공자는 "우리의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훼손하지 않고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가르쳤다.

서양 문화에서 자살은 대부분 궁지에 몰린 범법자들의 몫이다. 자신이 꾸민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수사가 자신을 향해 옥죄어 올 때 체포되지 않기 위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지만 타인의 손에 죽기 전에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기적인 행위'라 볼 수 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영화가 '쇼생크 탈출'이다. 영화에서 교도소장은 쇼생크 내의 살인과 부정부패로 체포되기 직전 총을 물고 방아쇠를 당겨 최후를 맞이한다. 인류 최고의 악당이라 할 수 있는 히틀러 역시 연합군의 진공으로 독일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시안화칼륨 캡슐을 삼키고 권총으로 자살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그는 죽은 후에 자신의 시신이 연합군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부하들에게 시신을 불태우라고 명령한다.

서양에서의 자살이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끝내는' 의미가 강하다면, 동양에서 자살은 대의를 위하거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결백을 밝히는 수단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즉, 서양의 자살이 남들에게 선택당하지 않겠다는 '이기적 자살'이라면 동양에서의 자살은 자신의 진정한 뜻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떳떳한 자살인데, 그 형태는 남들이 나의 죽음을 다 볼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서 목을 매달거나,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상태에서 공동체의 우물에 빠지는 등 자신의 시신을 전시함으로써 경종의 의미를 부여한다.

동양에서는 목숨을 끊는 행위를 나쁘게 보지 않고 오히려 충절과 절개가 높다고 칭송하는 경우도 많았다. 죽은 후에 결백을 인정받기도 했다. 조선시대 여성 자살의 대부분은 추문에 대항하여 자신의 결백과 수절을 증명하기 위해 감행한 사건들이었다. 1980년대 여름밤을 으스스하게 한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한풀이를 하다가 사라진다는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한국인의 자살에 대한 정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귀신은 많은 경우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자신의 억울함과 진실이 밝혀지면 더 이상 인간세상을 괴롭히지 않고 정중하게 절을 하고 저승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성완종 회장의 자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서양식의 궁지에 몰려서 나온 행동인가, 아니면 동양의 억울함의 표현인가.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동양에서는 자살하는 것은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지만 서양에서는 자살하면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자살에서는 죽은 자가 '나쁜 놈'이 되는 것이고, 동양의 자살이라면 유서에 있는 사람이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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