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출향기업인 열전] 3. 패션그룹 형지 최병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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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앞선 반걸음으로 세 번의 인생 시련 이겨냈죠"

지난주 서울 강남에 있는 패션그룹 형지 본사에서 만난 최병오(62) 회장은 좀 흥분돼 있었다. 그날이 마침 국내 제화업계를 한때 주름잡았던 '에스콰이아'의 인수 계약이 있던 날이었다. 최 회장은 "우리 브랜드들이 10여 년밖에 안 된 것들이 수두룩한데, 55년 된 브랜드를 인수했으니…"하며 감격해했다.

형지는 2013년 매출 '1조 원 클럽'에 가입했고, 이제는 7개 계열사에 16개의 브랜드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최 회장은 현재 한국의류산업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부산 국제시장 한쪽에 있는 페인트 가게의 점원으로 시작해 서울 반포 빵집 사장, 서울 동대문 옷 가게 사장을 거쳐 이제는 '패션업계의 거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부친 별세로 가세 기울었지만
국제시장 페인트 가게로 시작
7개 계열사 그룹 수장으로

제화명문 '에스콰이아' 인수
종합 패션·유통 그룹 발돋움
"반걸음씩 전진하는 게 사업"

■롤러코스트 같은 사업 인생

지금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본사까지 두고 있는 최 회장이지만 그의 과거를 들어보면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최 회장은 어린 시절 부산 하단동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고 나면서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자갈밭이었다.

고교 2학년 때 국제시장에 있는 외삼촌의 페인트 가게 일을 거들며 사업에 입문했다. 페인트 도매업이었는데 외삼촌이 몸이 아파 잠시만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외삼촌은 결국 몇 달 뒤 세상을 떠났고, 19세의 최 회장이 이를 맡아야 했다.

이후 7년간 가게를 그럭저럭 운영해왔다. 그러다가 방수 페인트 제조 사업에 뛰어들면서 망했다.

페인트 사업이 실패한 뒤 그는 1981년 서울 반포에서 빵집을 차렸다. 당시 근처에는 유명한 빵집들이 모여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그런 속에서 낸 아이디어가 길거리에서 파는 '센베이(전병)'를 빵집에서 구워 파는 것이었다. 이를 사 먹으려고 다른 지역 사람까지 몰릴 정도였고, 1년반 만에 가게 얻을 때 빌린 돈을 다 갚았다고 한다.

이후 제과점을 그만두고 시작한 것이 의류사업. 그는 동대문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특히 '원더우먼 바지'는 대성공이었다.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동생이 원단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원단 장사는 물론이고, 원가도 낮출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에게 어음을 빌려주기 시작하면서 돈이 돌지 않았고, 결국 1993년 부도를 맞았다.

한동안 정신이 없었지만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다시 동대문 남평화시장의 쪽방으로 들어갔다. 패션그룹 형지의 전신인 형지물산을 만든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의류업계의 '신화'가 됐다.

■1조 원 클럽 성공 신화

최 회장은 성공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남들보다 반걸음 먼저 생각하고 실행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30여 년 전 서울에 올라오면서 영선반보(領先半步)라는 말을 마음에 새겼죠. 제 자신이 남들보다 못 배웠고, 뛰어나지도 않은데 힘들 때마다 저를 다잡는 말입니다."

형지는 최근 에스콰이아 인수로 의류와 패션유통 등 기존 사업 영역에 제화와 잡화 부문을 추가하게 됐다. 이를 통해 종합 패션·유통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최 회장은 "여러 사람들이 형지가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보이는데 전통적인 제화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면서 "향후 우리가 진출해 있는 중국시장에도 선보여 에스콰이아의 부활을 알리겠다"고 자신했다.

최 회장은 얼마 전 선보인 골프의류 '카스텔바작'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날 인터뷰 전에 함께 찾은 이 브랜드의 매장에서 최 회장은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에 비싸지 않은 가격 덕분에 일부 매장에선 하루 1천만 원 이상 팔리는 곳도 있다"고 자랑했다.

사업이 번창해지면서 요즘 그는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건강관리를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다. 헬스클럽을 다닐 시간이 없어 회장 집무실에 덤벨과 아령을 비치해 놓고 수시로 하고 있다고 한다.

■고향 부산에 보은

최 회장은 사업 확장에 힘을 쏟는 한편으로 나눔에도 앞장서고 있다. 2006년부터 패션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 후원을 시작으로 패션트렌드센터 건립 기증, 패션학과 인턴십 프로그램 등 꾸준하게 기부 활동을 펼쳐왔다.

서울대 패션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친 뒤 학교에 기여한 공로로 자신의 이름을 딴 '최병오홀'까지 서울대에 세워져 있다. 그의 사업 성공기와 나눔 실천이 화제가 되면서 요즘엔 연 30회가량 전국을 돌며 강연도 다니고 있다.

형지는 오는 10일 양산물류센터 준공식을 가질 계획인데 최 회장은 이곳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웨딩홀에 자사의 의류 매장도 열고, 스시 뷔페도 함께 준비 중이다. 고향인 하단에도 돈을 벌 때마다 조금씩 땅을 사모아 복합 패션몰을 짓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하루아침에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씩 하나씩 목표를 정해서 반걸음씩 나아가 보세요."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사진=박희만 기자 phman@


1조 원 클럽 가입한 '형지' 최병오 회장은?

-1953년 부산 출생

-부산고등기술학교, 단국대 명예 경영학 박사

-서울대 패션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1982~1993 의류업체 크라운사 대표

-1994~1997 형지물산 대표

-1998~2009 형지어패럴 대표

-2009~패션그룹 형지 대표이사 회장

-2011~한국의류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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