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연작 김형대 화가 "세월호 희생자 모두 화폭에 담을 겁니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세월호 사건 이후 1년째 희생된 아이들의 모습을 연작으로 그리고 있는 김형대 작가의 작품 중 '천 개의 바람이 분다'.

지난해 4월.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린 세월호 사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건 세월호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도 함께 수장됐다. 30년간 전업작가로 살았던 김형대(49) 화가는 세월호 사고 이후 2달간 붓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배 안에서 죽어 가는데 어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작업실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더군요."

참사 후 2달간 붓 못 잡다
팽목항 방문 후 연작 시작
1주기 전시회 화랑들 거절
망미동 작업실에서 열기로


김 작가는 당시 '이러다가 평생 붓을 잡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단다. 그렇게 절망에 빠진 김 작가를 다시 캔버스 앞으로 부른 것도 결국 세월호와 아이들이었다. 팽목항을 2번 다녀온 후 김 작가는 팽목항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10개월 동안 세월호 연작에만 몰두했다.

"대한민국을 마비시켰던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여전히 9명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는데 사람들은 어느새 세월호를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으로 기록해 사람들이 잊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10시간 이상 세월호만 그렸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한국화와 탱화까지 섭렵한 김 작가는 이번 세월호 그림에 독특한 방식을 선택했다. 전주에 특별히 주문한 두꺼운 한지를 캔버스 대신 사용하고 아교와 분채를 섞어 강한 색채의 물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세월호 그림 작업 중인 김형대 화가. 강원태 기자 wkang@
그렇게 탄생한 세월호 그림들은 애잔하고 강렬하고 깊은 감동이 담겨 있다. 4월에 피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목단꽃(모란꽃) 봉오리에 아이들 얼굴이 한 명씩 들어가 있다. 피지 못한 봉오리는 인생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야 했던 아이들의 애달픈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아이 한 명마다 작가가 쓴 사연도 인상적이다.

"단원고 2학년 3반 혜원이는 2014년 4월 22일 가족의 곁으로 돌아왔다. 혜원이는 세영이와 함께 서울 동작구 달마사에 잠들어 있다."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아이의 얼굴을 보니 목단꽃의 붉음이 처연하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분노를 담은 그림도 있다. '그날'이라는 제목의 100호짜리 대작. 그림 가운데에는 얼굴 세 개, 팔 여섯 개를 가진 아수라(불교에 나오는 개념)가 떡하니 서 있다. 아수라 좌우로 희생된 학생들과 피눈물을 흘리는 가족, 탈을 쓴 채 세상을 비웃는 권력자들이 보인다.

노란색 리본을 묶은 천 개의 손이 바다에서 나오는 그림도 있다. 손바닥에는 눈이 있다. 세상의 재난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김 작가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모든 이를 그림으로 담을 생각이다. 모든 작업을 접고 세월호 그림만 그리다 보니 당장 물감 비용을 걱정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김 작가가 이 작업을 하며 가장 힘든 점은 여전히 아이들을 그릴 때 울컥하는 마음을 달래는 일이다. 그림이 모두 완성되면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에게 보낼 계획이다.

김 작가는 세월호 사고 1주기를 맞아 몇몇 화랑들에 전시를 제안했는데 대부분 화랑이 "이런 그림은 판매가 어렵다"며 거절하더란다. 그래서 부산 수영구 망미동 골목 자신의 작은 작업실에서 세월호 1주기인 16일부터 31일까지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