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음식으로 읽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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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손님의 후기를 공유하는 옐프 사이트 화면. 후기 1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끈적거리는 속살' '접시 위의 오르가슴' 따위의 성(性)적 표현이 많았다. 어크로스 제공

음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는 것을 '음식 포르노'라 칭한다.

식욕, 그 너머의 욕망을 간질이는 신종 관음증은 이제 '먹방', 신문, 블로그와 SNS를 종횡무진하는 '콘텐츠의 대세'로의 입지가 확고하다.

만능 요리사 '차줌마'를 탄생시킨 tvN의 '삼시세끼'는 그 꼭짓점을 보여 준다. 상상의 허가 찔리는 기발함과 비범함이 극적으로 반복될 때마다 쾌락의 대리만족도 절정을 오르내린다.

미국 스탠퍼드대 언어학 교수인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 포르노' 현상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는 언어학자답게 '음식의 언어'를 분석한다. 먹고 마실 때 쓰는 일상의 언어 속에 숨은 은유, 감정, 감수성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서 인간본성까지 파고든다.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그는 손님의 평점(최고점 5점)과 후기로 가게를 평가하는 옐프(Yelp) 사이트를 분석했다.

100만 건의 후기에 등장하는 단어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재밌는 경향성을 발견한다.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성(性)적 표현이 많았던 것이다.

예컨대 감각적인 쾌감을 '관능적인' '섹시한' '유혹적인'으로 수식하는 것은 차라리 점잖다. 마음에 드는 와인을 '액체 비아그라'로, 디저트는 '접시 위의 오르가슴'으로 노골적으로 비유하는 게 예사다. 맛있는 음식의 질감은 '끈적거리는 속살' 같은 섹스 연관 표현이 즐겨 사용된다. 비슷하게 '매끈한' '촉촉한' '보송보송한' '뜨거운' 따위의 관능을 자극하는 형용사들이 난무한다.

중저가의 만족감은 '섹스'가 '마약'이나 '중독'으로 대체된다.

'마늘국수 이제 내가 고르는 마약이야' '닭날개 조심해 중독적이야' '이 튀김에는 분명 마약이나 뭔가 중독성분이 들어 있을 거야'.

또 저자는 맛집 리뷰 중 '대단한', '맛있는', '놀라운' 같은 단어는 '평범한', '나쁜', '끔찍한'에 비해 3~10배씩 더 자주 쓰인다는 점에 주목하며 인간 진화와 심리, 행동을 풀이한다.

저자에 따르면 음식에 대한 호평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뭔가 먹기 좋은 것을 찾겠다는 욕구에서 비롯되어서다. 인터넷 때문에 최근 생긴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언어를 형성해온 것이기도 하다.

저자의 통찰은'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명제에서 더 나아가 '내가 먹고 말하는 것이 바로 내가 되고 싶어 하는 것'에 이른다. '음식 포르노'는 그 본질적인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댄 주래프스키 지음/김병화 역/어크로스/408쪽/1만 5천300원. 김승일 기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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