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출향기업인 열전] 1. 신영그룹 강호갑 회장
맨손으로 일군 매출 1조… "100년 이상 가는 기업 만들 겁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하루하루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특히 지방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수도권이나 타지역에 기업을 세워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기란 더더구나 쉽지 않다. 갖은 고난과 시련을 헤쳐내고 해당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 중에는 일반인들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곳도 있고 B2B(기업간 거래) 위주여서 해당 분야에서 '알짜기업'으로 소문난 곳도 있다. 수도권이나 해외 등 타지에서 활동하는 부산·울산·경남 출신 기업인들의 성공 스토리와 기업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인 신영그룹의 강호갑(61) 회장은 맨손으로 시작해 이제는 매출액 1조 원을 내는 기업의 CEO(최고경영자)가 된 인물이다.
신영은 차체 제작 기술과 자동차 부품 금형 기술에선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업체. 현재 현대·기아차 1차 밴드(협력업체)와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2년 전 부터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회장을 맡아 '중견기업 육성 특별법안'을 통과시키고 관련 규제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주 서울 마포의 중견련 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 새벽 2시반까지 일을 했다는 그이지만 다부진 체격에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美서 회계사하다 형 SOS로 부산행
IMF 직후 부도난 車부품회사 인수
17년 만에 계열사 6곳 거느린 CEO로
중견련 회장 맡아 기업 규제 개선 앞장
"중견기업 키우면 일자리 문제 해결
대기업만 기업이란 생각 버리세요"
■고생끝에 이룩한 매출 1조 원 CEO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의 회장이지만 사실 그의 꿈은 기업가가 아니라 외교관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뜻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었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대학은 고려대 경영학과로 진학했다. 졸업후 미국 조지아 주립대에서 회계학 석사를 받아 회계사로 현지에서 취직했다. 그것도 잠시 1988년 큰 형인 강호일 비와이(BY) 대표가 "회사 일을 좀 도와달라"며 구원요청을 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당시 "아내에게 '2년만 형 도와주고 다시 돌아가자'고 했는데 그게 27년이나 됐다"며 웃었다.
BY는 큰 형이 부산에서 세운 조선부품회사로, 당시 일본기업과 기술 제휴를 맺을 기회가 왔다. 영어로 해외 영업을 해줄 전문가가 필요해지면서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길을 포기했지만 형 일을 도우면서 적지않은 성과도 얻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알게됐다는 점이다. "조선공학도 출신인 형은 엔지니어링과 기술쪽을, 저는 관리와 해외영업 등을 담당했죠. 미국서 공부하고 기업현장은 처음이라 별의 별 경험을 다했습니다. 자금도 끌어오고, 직원들 영어교육도 시키고…. 물론 당시 경험은 중견기업연합회 법안을 만드는데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어 6년 후엔 조선부품 중 하나인 컨트롤 밸브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고, BY는 탄탄한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1998년 현대차그룹이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은 기아차를 합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동차 사업을 해야 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때부터 매물로 나온 자동차부품회사를 찾아다녔다. 마침 경북 영천에 부도가 난 신아금속이 경매로 나왔다. IMF 직후여서 주변에서 이를 인수하는데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강 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믿었다. 1999년 12월 190억 원에 신아금속을 인수했다.
"3년만 고생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적중했습니다. 99년 이후로 한 번도 회사 매출이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강 회장은 직접 연구개발에 매달려 '핫프레스포밍'(철을 뜨겁게 달궜다가 급히 식혀 형상을 만드는 공법) 등의 고급 기술을 개발해냈다. 최근엔 금형 분야로 눈을 돌려 매출액을 늘려가고 있다. "현대·기아차 매출액 비중이 예전에는 100%였는데 지금은 10% 정도입니다. 우리 스스로 기술력을 갖춰 해외 업체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얘기죠."
이같은 기술력 덕분에 17년만에 벌써 계열사가 6개나 된다. 앞으로 100년 이상 가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