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 산책] 엘리제궁의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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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냉장고를 부탁해

엘리제궁의 요리사. 판씨네마 제공

'엘리제궁의 요리사'는 음식을 소재로 한 여느 영화들이 그렇듯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을 선보인다. 한국에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프랑스 가정식 요리들은 화려한 장식 없이도 눈을 황홀하게 하고, 냄새 없이도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의 초점은 음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엘리제궁으로 들어간 한 요리사(라보리)와 그녀가 그 곳에서 겪게 되는 여러 경험들에 맞춰져 있다. 상대적으로 요리를 하는 과정이나 맛있게 먹는 모습은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음식에 대한 철학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시골 마을에서 송로버섯 농장을 운영하던 '라보리'는 우연한 기회에 엘리제궁에 입성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테랑 대통령의 개인 요리사가 된다. 관저의 유일한 여성 셰프로서 온갖 눈총을 받으면서도 라보리는 전통 가정식 요리를 원했던 대통령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홈쿠킹이라고 해도 재료 선택부터 서빙까지 모든 과정을 꼼꼼히 관리하는 라보리는 그 어떤 고급 음식을 만드는 셰프들보다 열정적이고 프로답다. 깔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와 단정한 스커트, 우아한 진주 목걸이는 친근하면서도 기품 있는 라보리의 성격을 대변하는 의상이자 곧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프렌치 홈쿠킹의 이미지이다.

미테랑 전속 여성 요리사 에피소드
프랑스 음식 철학 담긴 가정식 조명

음식에서 할머니의 따뜻한 손맛을 기대하는 대통령의 취향은 요리를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로 생각하는 영화의 지향점과 연결된다. 그래서 라보리와 대통령이 처음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섬세하게 연출되었다. 공통점이 별로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은 음식에 관한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깊은 신뢰와 유대감을 갖게 된다. 그들의 우정은 이후 라보리가 관저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대통령의 건강을 명분으로 식단을 제한하는 행정관들, 오래된 셰프들의 견제와 텃세는 오직 대통령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라보리를 크게 낙담시키고 만다. 행정관과 다른 셰프들에게 요리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 혹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지 못하게 된 것이 미테랑 대통령만은 아닐 것이다. 맛집 탐방 기사와 각종 요리 프로그램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칼로리와 식재료, 체질에 따른 제한 등은 현대인들의 머릿속에 신호등(주로 적신호에 머물러 있는)을 켜게 만든다.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끔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만든 사람의 정성과 온기만을 느끼며 먹고 싶은 음식도 있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가슴까지 뜨끈하게 채우는 가정식 요리가 그리워지는 영화다. 19일 개봉.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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