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들쥐와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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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준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했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존 위컴은 미국으로 귀국한 직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게 된다. 한국인들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전두환이 곧 한국의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들쥐 떼처럼 그의 뒤에 줄을 서고 그를 추종하고 있다." 권력에만 다가갈 수 있다면 누가 어떤 방법으로 지도자가 되든 의심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모르고, 설혹 그름을 알더라도 전적으로 충성하는 당시 우리의 비겁한 복종문화를 비꼬는 뼈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언론과 국민은 발언의 진의를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 국민을 하찮은 들쥐에 비유한 위컴에 분노했다.

위컴 '들쥐' 발언에 국민 분노
리퍼트 한국 사랑엔 박수

'미선·효순' 사건 계기
미 외교 감정 마케팅으로 전환

국제관계엔 '영원히'란 말 없다
함께 가기 위해선 이익 같아야


"비 온 뒤 땅이 굳습니다. 같이 갑시다." 피습으로 얼굴과 손에 자상을 입고 치료를 받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퇴원하면서 떠듬거리는 한국어로 한 말이다. 그는 "한국과 미국은 군사적 파트너십뿐만 아니라 역동적 경제관계 등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고, 대통령을 위시하여 한국의 정치권 인사들은 그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한·미 동맹을 확인했다. 하긴 영화 '국제시장'이 유행할 당시 '꽃분이네'를 방문하고 떡볶이를 먹은 리퍼트를 우리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대사의 한국 사랑은 끔찍해서 아들 이름마저 한국식으로 '세준'이라 지었다고 한다. 그가 보고 싶은 영화는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그린 '명량'이라고 하며, 한국 음식에 대해서는 "(너무 좋아해서 몸무게가 왕창 늘 것 같으니)문제"라고 한다.

'들쥐와 떡볶이'로 상징되는 위컴과 리퍼트 사건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현지화 외교가 고도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동안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은 이성과 감성의 조합을 통해 세계 곳곳을 경영하고 있는데, 한국은 감동의 물결이 흐르면 마음이 무너지는 국민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을 다루기 위해서는 합리성보다는 좀 치켜세워 주는 감성적 접근이 더 용이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과거에 주한 미국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들은 정부 대 정부 관계에 힘썼지만, 최근에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시장 방문 등을 공공외교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름진 할머니와 손잡고, 산 낙지 씹어 먹고, 팔팔한 생선 들어 보이면 우리는 흐물흐물 무너지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 방식이 이성적 설득에서 감정 마케팅으로 전환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2년 '미선·효순' 사건이다. 훈련을 위해 이동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우리 중학생 두 명이 깔려 현장에서 숨진 안타까운 사건이다. 당시 유족들은 미군 책임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지만, 미군 당국은 '이 사고가 공무 중에 일어난 사고이기에 재판권이 미국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권 포기를 거부했다. 당시 월드컵으로 달아올랐던 한국 사회는 공분했고, 불거진 반미감정은 연말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만약 미국 외교관들이 '같이 가자'를 외치며 전통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었더라면 한국의 정치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2010년 7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주한 일본 대사에게 어떤 '애국지사'가 시멘트 조각 2개를 던졌다. 그는 외국사절폭행 혐의로 기소됐지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당시 재판부는 '우리 형법이 외국사절폭행죄에 대해 단독주의를 취하고 있기는 하나 일본이 '외국사절폭행죄'를 폐지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택했다'고 판시했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은 통상적으로 '국가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재벌 총수들이 받는 형량이다. 당시 일본 대사를 폭행한 '애국지사'가 이번에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이다. 외국사절 폭행을 폭행죄로 다루지 못하고 우리나라와의 친밀관계를 통해 다루는 집단적 문화야말로 바로 위컴이 35년 전에 언급한 '들쥐문화'가 아니면 무엇일까.

"영원히 같이 갔으면 합니다." 이는 '함께 가자'는 리퍼트 대사의 말에 '영원히'를 붙여 화답한 박근혜 대통령의 덕담이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영원히'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관계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고, 단지 영원한 국가이익만 있다'는 말은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남긴 명언이다. 리퍼트 대사는 키신저의 까마득한 후배이다. 비록 우리의 눈에는 '떡볶이를 먹는 동네 아저씨'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훈련된 외교관이다. 미국과 한국이 함께 가기 위해서는 양국 이익이 같은 선상에 있어야지, 대사가 '떡볶이'를 먹는다고 우리 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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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피해 보상에 대한 합의를 해 주지 않아 회사가 부도날 지경입니다."

최근 만난 부산의 한 중소기업 임원은 국내 굴지의 물류 대기업의 횡포에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기업으로부터 물건이 제때 오지 않아 결국 다른 업체와의 계약이 물거품이 됐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계약 취소 이후였다. 향후 소송 등으로 수십억 원 이상의 피해가 우려되지만 해당 대기업은 그만큼 보상해 줄 수 없다고 했고, 심지어 외부에 이번 사건과 관련되는 '역정보'까지 흘리는 바람에 영업 수주에도 곤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 중소기업의 직원은 고작 10여 명, 연간 매출액도 200억 원 안팎. 맞붙은 대기업과는 직원 수, 매출액에서 수십 배 차이가 난다.

소송으로 해결책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에 중소기업 임원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소송하다가 회사가 망할 것"이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해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이후 대기업의 대국민, 대협력업체에 대한 태도는 적어도 겉으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룹들마다 상생대회 같은 '보여 주기 식'이 아닌 대금 납부기일 단축, 기술개발 지원 등 '실질적인 상생'을 외쳐 댔다.

지난주에 시작된 대기업들의 주총에서도 일부 기업은 주주들을 의식해 자리 배열을 바꾸거나 기관투자자 의견을 받아들이는 등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 줬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공식적인 부분'에 한해서인 듯하다. 사례로 든 부산 중소기업처럼 현장에선 여전히 대기업의 갑질로 괴로워하는 아우성이 들리고 있다.

한 유통 대기업은 최근 협력업체와의 소통과 대금지급 단축 등 다른 경쟁사들이 주목할 만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의 한 협력업체는 기자에게 회사의 바겐세일이나 경품대잔치에 협찬금을 지원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해당 행사에 협력업체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오로지 대기업의 자체 고객 이벤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상생'을 강조하지만 대기업들의 행태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수법이 더 교묘해졌다. 거액이 오가는데도 계약서도 쓰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주총장에서 삼성물산 직원들이 자사 주총에 참석 예정이었던 소액주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미행한 정황이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삼성물산은 즉각 사과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섰지만 재계 1위 삼성의 행태에 대해선 비난론이 쇄도했다.

대기업들이 땅콩 사건 이후 '상생' '국민기업'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이권과 관련된 부분에선 교묘하게 그리고 여전히 협력업체나 국민보다는 자사이익 우선행태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힌두교 속담에 우리 대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형제의 배가 항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 그리고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의 배도 무사히 항구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dj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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