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기자의 피플&] 한국출판학회상 경영·영업부문 대상 강수걸 산지니 출판사 대표
10년째 매년 신간 20권 이상… 지역 출판사론 쉽지 않은 길이었죠
"전체 출판시장 매출의 95%를 서울 지역이 차지하는 현실에서 지역 출판사가 살아남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분야보다 출판시장의 서울 집중화는 너무 심하지요. 책을 만들어 전국 서점에 유통·판매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지역에서 10년 동안 1년에 20권 이상의 도서를 꾸준히 냈다는 점을 평가해 큰 상을 준 것 같습니다."
최근 제35회 한국출판학회상 2015년 경영·영업 부문 대상을 받은 도서출판 산지니 강수걸(48) 대표를 지난 6일 부산 연제구 법원남로 15평 남짓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강 대표는 지역 출판사로는 첫 수상이라 의미가 있다며 활짝 웃는다. 역대 경영·영업 수상 출판사는 김영사, 교보문고, 문학과지성사, 사계절, 창작과비평사 등 서울 메이저 출판사가 대부분이었다고 귀띔한다.
서울 메이저 출판사 받던 상
지역 출판사로는 첫 수상
지역 시장 열악한 사정 감안
파주 출판단지 내 물류창고 확보
전국적인 유통망 구축 주효
지명도 있는 필자 구하기 어려워
초창기엔 번역서로 돌파구 마련
아이디어가 책 되는 과정 즐거워
1만 부 이상 팔리는 책 만들고 싶어
산지니는 지난 2005년 2월 설립됐다, 올해 10돌이다. 인문사회과학도서를 많이 냈으나 이후 문학·학술도서로 분야를 넓혔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이달 초 발표한 '2014 출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권이라도 낸 출판사는 2천895곳이다. 20종 이상 낸 출판사는 535곳으로 20%도 채 안 된다. 산지니는 지난해 50종의 책을 출판했다. 10년간 낸 책은 280종이다. 대단한 성과다. 경영과 영업을 어떻게 했기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는 출판사가 됐을까.
"지역 출판시장이 열악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요. 기존 지역 출판사는 영업에만 집중하고 물류에는 관심이 적었습니다. 산지니는 애당초 전국 유통망을 확보하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지요. 2006년부터 파주 출판단지 내 물류창고를 이용했습니다. 물론 초기 비용이 많이 들었지요. 대신 서울을 비롯, 전국 어디서 주문을 하든 배달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강 대표는 파주 물류창고 외에 부산 온천장에도 물류창고를 확보, 지역 유통은 이곳에서 담당하게 했다. 전국 유통과 부산 유통을 이원화한 셈이다. 인쇄도 파주와 부산 두 군데서 했다. 강 대표는 파주 출판단지에는 창비·문학동네·열린책들 등 서울 지역 대형 출판사도 이전할 정도로 인쇄부터 제본·출력까지 최신 시설이 한곳에 몰려 있어 국내 출판산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한다.
"물론 꾸준히 살아남으려면 좋은 책을 만드는 게 결국 관건이었죠. 신생 출판사인 데다 지명도 있는 필자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초기엔 번역서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부산과 가까운 중국에 집중했지요. 지역 출판사가 관심 안 두는 데 착안한 겁니다. 특히 당시 중국정부의 번역료 지원제도를 적절히 활용했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강 대표는 초창기 '부채의 운치' '차의 향기' '요리의 향연' 등 중국 문화 번역서로 인지도를 넓히다가 2007년 '무중풍경'이란 중국영화 번역서가 히트 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고. 이 책은 영화진흥원 학술도서·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울러 불교 기반이 강한 부산의 특성을 살려 인도를 소개하는 책도 많이 출판했다. 결국 인구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뜨는 중국과 인도를 선택한 게 주효했다. 중국·인도 관련 책만 해도 30종이 넘는다고.
"특히 부산이 영화의 도시인 점을 감안, 중국영화를 한·중·일 3국에서 다양하게 분석한 책을 완결시켜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서 말한, 중국 본토 연구자가 쓴 '무중풍경'에 이어 한국 연구자의 '상하이 영화'(2010·2012년) 관련 3권, 일본에서 중국 연구자가 쓴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2015년)가 그것입니다. 국내 출판사 어디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기획이지요."
강 대표는 부산 작가가 쓴 책 중에는 '부산을 맛보다'와 '부산언론사연구'가 기억에 남는다고. 특히 지역 맛집을 소개한 '부산을 맛보다'는 지역 관련 책 중에 가장 많이 팔렸고 일본에까지 수출돼 산지니로선 의미가 깊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새로 시작한 산지니시인선도 강 대표가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획이다.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가 1호 시집이다. 다른 시인선과의 차별화를 고심하다 해설 대신 대담을 싣고 시인의 사인을 책 표지에 은은하게 넣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고.
"지난 2007년부터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발행인도 맡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편집인도 겸합니다. 25년 역사를 갖고 있는 잡지인 만큼 부산의 대표적인 잡지로 자리 잡는 데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우선 재정의 자립을 이루고 기획력 강화를 위해 안정적 편집위원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강 대표는 "'야생의 오래된 매'라는 산지니의 뜻처럼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는 출판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고 금융위기가 온 2008년 면학도서·청하서림 등이 부도로 폐업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그해부터 흑자경영이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설립 3년여 만에 이룬 성과다.
한국출판학회상 시상식 모습. 산지니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