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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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가족 재난영화'는 잊어라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블룸즈베리리소시스 제공

우리는 종종 다가오는 파국을 직시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무력함 때문이라기 보단 설사 문제가 있는 걸 알아도 솔직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 균열은 비겁함을 쐐기 삼아 번져나가는 법이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실종된 가장의 권위 앞에서 실핏줄 터지듯 뻗어나가는 감정의 균열을 응시하는 블랙코미디다.

눈보라에 혼자 피신한 위기의 가장
부부·가족 의미 되묻는 블랙코미디

늘 일에 쫓기던 토마스(요하네스 바쿤게)는 간만에 가족과 함께 떠난 스키여행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둘째 날 스키장 테라스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던 도중 저 멀리 엄청난 양의 눈보라가 식당을 덮친다. 문제는 그 순간 토마스가 가족들은 내버려 둔 채 혼자 몸을 숨긴 것. 다행히 가벼운 눈 먼지에 불과했던 눈보라였기에 모두 무사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위기의 순간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은 남편의 모습에 실망한 아내는 남편에게 진지한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별일 아닌 듯 웃어넘기며 상황을 얼버무리려 하고 그때마다 불신과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진다.

'포스 마쥬어'는 불가항력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는 통제 불가능의 자연재해보다는 그 앞에서 튀어나온 생존 본능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길 바라는 아내의 마음을 알지만 차마 자신의 추태를 인정할 수 없어 빙빙 돌리다 결국 사태를 악화시키는 남편의 행동은 서글프고 비겁해서 더 '인간적'이다. 요약하자면 좋은 질문 같은 영화다. 카메라는 옳고 그름을 단정 짓는 대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곳곳에 깔린 위트 있는 상황과 유머로 긴장을 풀어주는 절묘한 리듬감도 좋다. 그럼에도 끝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건 그야말로 남 일 같지 않은, 내 가족, 나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파괴력 있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12일 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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