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감정노동자에게 힘과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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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문 경성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달 부산시의회에서 콜센터 상담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있었다. 부산시의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고용된 그들 대부분은 2030 청년들로서 하루 7~9시간 정도를 동일한 자세로 앉아 전화를 걸거나 받으며 고객을 응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고객의 주문이나 불편 사항을 접수하는 등 고객의 요구를 만족하게 해 줘야 하는 입장인 그들은 고객을 항상 친절하게 대하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타인의 일방적인 요구나 불만 사항을 들으면서도 진심으로 웃으며 밝은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우울한 상태에 빠져 있기 십상이다.

콜센터 상담원처럼 대인서비스 종사자로서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 표현을 직무의 한 부분으로 여겨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직장인을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로는 항공기 객실 승무원, 홍보 도우미와 판촉사원, 쇼핑센터의 판매 근로자, 음식 서비스 관련직 종사자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인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겪는 감정적 부조화로 인해 식욕, 성욕 등이 떨어지고, 감정적 소진에 이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좌절, 분노, 적대감으로 스트레스가 쌓여 정신질환이 발병되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얼굴 없는 폭력'에 상시 노출
감정노동자 30% 자살 충동 경험
사회문제로 대두 대책 마련 시급

인간적인 삶 보장하는 처우 개선
성숙한 시민의식·소비자문화의식
더불어 사는 사회 만들어야


우리나라의 경우 감정노동자들의 30%가 자살 충동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의 자살 사건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0월 입주민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경비원 이 모 씨가 분신자살한 사건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이 사건을 업무수행 과정에서 누적된 스트레스가 극단적 형태로 발현돼 발생한 사고로 보고 감정노동으로 인한 첫 산재로 인정하였다. 이것은 감정노동자의 문제를 이제 더는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의 직업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하고 있는 감정노동자의 직업적 스트레스 감소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먼저 감정노동자의 근로환경을 들여다보자. 컨택센터 종사자들의 50% 이상이 120만~140만 원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으며, 직업의 장래성을 보장 받지 못하는 계약직 근로자이다. 그들은 왜 투철한 서비스 정신과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에서 겪으면 참을 수 없는 상황들을 참아 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불안정한 고용상황이지만 이들에게는 생계유지를 위한 유일한 수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감정노동자들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기본적인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그리고 소비자 문화의식도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우리는 왜 내가 필요한 물건, 정보 등에 대해 충분한 도움을 받으면 되는 일에서조차 극진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것일까?

많은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고객들의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태도에 대해 자신들이 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고 느끼며, 특히 콜센터 상담원들은 전화를 통해 '얼굴 없는 폭언'을 행하는 고객들의 무자비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 전반에서 상대가 누구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이 성숙되어야 할 것이며,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서 서로에게 도움 주는 협력 관계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조치도 필요하다.

감정노동자 자신들의 스트레스 관리나 대처 방법, 감정 부조화를 해소하는 등의 개인적 측면에서의 정신건강 관리도 요구된다. 감정을 표현하는 빈도가 얼마나 잦은지, 감정을 표현할 때 얼마나 긴장하고 주의를 기울이는지, 표현해야 할 감정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얼마나 큰 감정의 부조화를 느끼는지 등 감정노동의 정도를 점검해 보고, 적절한 해소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자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존감을 높이며 심리적 어려움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되므로 사회적 지원체제에는 직장의 동료, 친구, 선후배 등과 같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정서적 지원부터 물질적인 원조, 칭찬, 정보 제공, 직무나 활동의 보조 등도 모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감정노동자 그들은 누구일까?

우리가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이 사회를 바라본다면 그들 또한 우리의 가족이자 친구들이다.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소비자 문화의식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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