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피폭 노동자 몸속엔 무슨 일이…
입력 : 2015-03-06 20:32:05 수정 : 2015-03-09 15:07:34
83일-어느 방사선 피폭 환자 치료의 기록 / NHK '도카이무라 임계사고' 취재반
방사선에 피폭돼 파괴된 염색체. 23쌍이 가지런히 정렬된 정상 염색체와 달리 산산이 부서져 어느 것이 몇 번인지 식별할 수 없는 상태다. 유전 정보가 담긴 염색체가 파괴되면 생명유지의 기본인 세포분열에 이상이 생긴다. 뿌리와이파리 제공"방사선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일본 도쿄대학병원 무균치료실 혈액전문의 히라이 히사마루는 눈을 의심했다. 방사선 중에서도 에너지가 가장 큰 중성자선에 피폭된 오우치 히사시(당시 35세)의 골수세포 현미경 사진 속 염색체는 난생 처음 보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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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일-어느 방사선 피폭 환자 치료의 기록 / NHK '도카이무라 임계사고' 취재반 |
사람의 염색체라면 1~22번 상(常) 염색체와 성(性) 염색체(X, Y)가 순서대로 정렬돼 있어야 하지만 사진 속 염색체는 산산이 부서진 상태였다. 어느 것이 몇 번 염색체인지 식별할 수도 없었다. 잘린 채 다른 염색체에 달라붙은 것조차 있었다.
20년 경력의 의사 히라이조차 두려움을 느낀 건 '생명의 설계도'를 산산조각 내버린 방사선의 위력 때문이었다. 유전 정보가 담긴 염색체가 산산히 흩어졌다는 것은 생명유지의 기본인 세포분열에 이상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오우치의 몸은 이제 피부는 물론 혈액과 내장 점막을 재생해내지 못하게 됐다. 새 피부가 만들어지지 않는데 오래된 표피만 벗겨져 나갔으니 끔찍한 고통이 이어졌고, 출혈은 계속됐으며 장기들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방사선은 이식된 조혈모세포의 유전자마저 파괴했다.
도쿄대학병원은 최고의 의료진과 시설을 투입했지만 방사선 대량조사로 온 몸이 녹아내리는 증상에 대한 치료법은 처음부터 갖고 있질 않았다. 이길 가망이 없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83일-어느 방사선 피폭 환자 치료의 기록'은 1999년 9월 30일 일본 도카이무라 'JCO 도카이 사업소'에서 핵연료 가공 작업 중 발생한 임계사고 피폭자가 83일 만에 숨을 거두기까지의 기록이다.
의료진의 숭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우치의 죽음을 통해 증명된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건 기적뿐이었다는 점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원자력 사고에 대한 인간의 대처 능력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건 대체로 간과된다.
따라서 고리원전을 머리맡에 두고 반경 30㎞ 이내에 320만 명이 살고 있는 부산과 인근 지역에 주는 울림이 크다. 사고가 나면 누군가는 피폭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사고는 확률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성, 즉 일단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측면에서 봐야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NHK '도카이무라 임계사고' 취재반 지음/신정원 옮김/뿌리와이파리/228쪽/1만 2천 원. 김승일 기자 doj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