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인간답게 산다'는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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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 조효제

무상급식은 학생들이 '가난을 증명'하느라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도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인권의 문제다. 사진은 무상급식·무상보육 파탄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시위 장면. 부산일보DB

 한해 기업들의 접대비용 규모 7조 원. 하지만 나라 한쪽에선 빈곤에 짓눌린 세 모녀가 머리맡에 월세가 든 봉투와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은 자살이라는 막다른 길을 선택하면서도 최소한의 자존과 위신을 지키려 했다. 인간이 가난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것이 모멸감이기 때문이다.

인권학자의 인권 탐구기
다양한 인권 개념 쉽게 소개
복지국가도 시민 누릴 권리
복지정책 후퇴는 사회권 침해
'인권 경제학' 패러다임 제안


'부유층 자녀까지 왜 공짜 밥을 주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무상급식. 예산 문제로 휘청대는 이 무상급식도 사실은 인권의 문제다. 

학생들은 '가난을 증명'하느라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도 마음 편하게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는 보수, 진보를 떠나 인권의 문제이고 국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 조효제

'인간답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인권학자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오랫동안 이 질문과 씨름해 왔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주지 않냐고 하는 건 공허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는 '인간답게 살 권리'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나선 '인권의 여정'이다. 끊임없는 투쟁으로 지평을 넓혀 온 인권의 험난했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권이야 말로 '모멸 사회'를 변화시킬 '진정한 무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인권은 인간 삶을 아우르는 보편적 문제이고, 인간의 역사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 온 '인권 발견과 확장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 존엄'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체면과 위엄을 지켜주자는 뜻이다.

하지만 '학생이 치욕적인 언사와 체벌을 당할 때, 왕따로 몸과 마음이 멍들 때, 성적으로 줄을 세워 멀쩡한 아이의 자존감을 싹부터 잘라버릴 때, 청소 노동자가 창고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할 때, 공중파 방송에서 조선족의 말투를 우스개로 만들어 조롱할 때, 치매 노인이 기저귀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버텨야 할 때 인간의 존엄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말로 추락한다.'

책은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 연대권 등 다양한 인권 개념과 인권 담론도 일상의 언어로 풀어서 들려준다.

복지는 정부가 베풀어주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20세기 복지 국가는 시민권을 바탕에 깔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고 시민에겐 이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나라 경제가 괜찮아질 때까지,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거나, 일단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성장논리는 궤변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복지 정책이 후퇴하거나 일관성 있게 시행되지 않는다면 심각한 사회권 침해다. 인권은 특정 정당, 정권, 정치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인권은 민주 제도만으로 보장될 순 없다. 소득 불평등 해소, 자원 재분배의 경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어젠다였지만 어느새 자취를 감춘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현돼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인권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도 제안한다.

저자는 '인권은 본질적으로 쟁의적인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 인간의 존엄성은 건강한 시민들이 '익명의 작은 인권 운동가'로 변신할 때 지켜진다.

책 부록으로 실린 '세계인권선언'(1948년)에선 인류 전체가 합의했던 인본주의적 가치를 가슴 뭉클하게 느낄 수 있다. 조효제 지음/교양인/440쪽/1만 6천 원.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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