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부산이 닦아 준 '막순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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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훈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 '국제시장'을 최근에서야 뒤늦게 보았다. 회사 임원들과 주변 친구들이 손수건이 필요할 거라는 조언을 했다. 그래서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해서인지 흥남철수나 파독광부 장면에선 그다지 큰(?)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속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장면에서 정말 엉엉 소리가 나도록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장면은 주인공 덕수가 잃어버린 여동생 막순이와 찢어진 저고리로 서로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빠와 여동생이 흥남 철수 와중에 부두에서 헤어진 지 30여 년이 지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TV 모니터를 통해 서로 확인하는 모습을 보는 관객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영화를 본 대부분 친구 역시 이 장면에서 가장 많이 울었다고 한다.

'국제시장' 남매 상봉 눈물샘 자극
영화 본 사람들 이 장면서 감동 받아

봉사 중 만난 해외입양인들 생각나
부산 원도심이 고국 가족 찾는 비결

공동체 회복 '산복도로 르네상스'
따뜻한 시민 마음이 매력도시 원천

사실 영화 속 막순이처럼 우리나라의 해외 입양인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금도 진행 중인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한국전쟁 이후 약 24만 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고, 미국과 유럽 그리고 호주 등지에서 많은 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필자는 1980년대 후반 스톡홀름 출장 때 스웨덴의 한국 입양인을 만난 것을 계기로 해외 입양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현재까지 내 나름대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런 이유였는지 영화 속 막순이의 상봉 장면에서 눈물을 더 쏟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같은 연유로 우리 사회 안에서는 해외입양을 둘러싸고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갈등과 해외입양단체 간의 알력, 심지어 입양인 서로 간의 반목까지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필자가 봉사하는 단체는 해외 입양인이 만든 가장 오래된 단체이다. 이 단체는 해외 입양에 관한 정치적 중립을 추구하며 아동이 아닌 성인이 된 해외 입양인의 복지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이 한국사회에 동화되기를 원하는 경우 이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입양인 자신들이 스스로 운영하며 유럽과 미국의 지역적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는 점도 이 단체의 차별화된 특징이다.

우리 단체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전 세계 24만여 명의 해외입양인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시행하는 모국방문행사다. 미국, 유럽지역으로 떠나갔던 해외 입양인들이 이 행사를 통해 다시 한국을 찾아 생소한 한국문화를 체험한다. 특히 이들은 오래된 입양기록을 토대로 입양기관, 보육시설, 연고지 등을 방문한다. 매년 20~30명의 해외 입양인들이 이 행사를 통해 친부모 또는 형제를 만나 자신의 입양과정과 정체성에 대하여 이해와 화해의 과정을 가진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본인과 많은 자원봉사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성공률이 평균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례적인 한 해가 있었다. 바로 2013년 부산 지역을 연고로 하는 입양인을 대상으로 부산에서 행사가 시행됐을 때다. 이때 우리는 역대 가장 높은 40%의 친가족을 찾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높은 성공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부산의 지역적 특성에 그 비밀이 있다. 현재 부산은 해운대나 문현 국제금융단지처럼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천지개벽한 곳이 있는 반면 30~40년간 전혀 변하지 않은 구시가지도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입양인은 어려서부터 간직해 온 오랜 기억 그대로의 동네를 다시 찾아내기도 했다. 이는 현재 부산시가 원도심 재생사업으로 추진 중인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처럼 기존 자원을 활용한 공동체 회복이라는 사업취지와 연결될 수도 있겠다.

두 번째 비결은 주로 부산지역 대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활동과 부산시 행정·경찰공무원들의 친절한 지원 덕분이었다. 요컨대 부산의 특이한 도시구조와 열정적인 민관의 노력이 바로 부산 해외 입양인 친가족 찾기 캠페인의 성공 요인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근무하며 느끼는 점은 부산은 신시가지로 상징되는 힘찬 미래와 구시가지의 아련한 추억이 잘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오랫동안 발전이 정체된 구시가지의 도시재생사업이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못한 것을 꼬집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동적인 시민사회단체와 공무원,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을 돕고 사회에 봉사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시민들이 있기에 부산의 지역적 우수성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들이 부산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매력 넘치는 도시로 단단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의 기업 시민이 된 한국예탁결제원도 새로운 터전 부산에서 함께 성장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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