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우버'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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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준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우리 정부는 우버 택시와 '전쟁' 중이다. 우버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차나 기사를 선택하는 '주문형 개인기사 서비스'다. 201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첫선을 보인 후 세계 37개국 140여 개 도시로 진출했다. 그 과정에서 지구촌을 우버 '찬성' 대 '반대'의 공간으로 양분시켰다. 보수적인 유럽 도시들은 우버를 '허가 받지 않은 택시영업'이라고 결정한 반면, 혁신으로 이름난 미국의 뉴욕, 시카고, 보스턴과 싱가포르 등지에서는 '편리한 교통편'이라며 합법 판정을 받았다. 늦은 밤 택시의 승차 거부와 손님 골라 태우기가 만연한 서울에서 우버는 젊은 층에 인기 폭발이었다. 그러나 신기술에 놀란 서울시는 우버를 여객운수사업법을 위반한 '불법 영업'으로 규정했다. 부산은 아직 우버 논란에 휩싸이고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세계적인 도시는 아닌 것 같다.

주문형 개인기사 서비스 '우버'
지구촌 '찬성' 대 '반대'로 양분

창조·공유경제 찬사 대신
국내에선 불법영업 규정해 단속

우버 선풍은 새로운 기술력 때문
'민족주의' 안경 끼고 대처 말아야


우버는 새로운 공유경제 시대의 리더인가, 아니면 사회 질서의 파괴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만약 우버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우버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면 아마 정부와 서울시의 창조·공유경제상을 휩쓸었을 것이다. 2012년 서울시는 스스로를 '공유도시(Sharing City)'라 선언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공유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소유 시간의 90%가 운행되지 않는 시간이라고 한다. 하루 중 2시간 정도만 자가용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버를 통해서 일반 사람들은 유휴 가치로 남아 있던 자신의 자동차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쉬는 자원을 활용하는 동시에 일자리까지 만들어내니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 아닌가.

우리의 젊은이가 우버를 만들었다면 그는 청년 우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행사에 단골로 등장하였을 것이고, 정부는 제2, 제3의 우버 창업자가 나올 수 있도록 꿈나무 교육에 박차를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버 창업자는 한국 태생이 아니기 때문에 범법자로 몰렸다. 서울시와 교통부는 '자가용이나 임차한 자동차로 손님을 태우고 대가를 받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우버의 창업자 트레비스 캘러닉을 법원에 불구속 기소했다.

우버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면 '우파라치'라는 단어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는 우버를 불법영업으로 규정하고 최고 100만 원의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했다. 당연히 포상금을 노리는 '우파라치'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우파라치의 신고가 급증하면서 포상금 예산이 부족해지자 서울시는 건당 100만 원이었던 포상금을 20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국민의 돈을 생산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고 단속하는 비용으로 사용하니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우버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면 '짝퉁 우버'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는 우버와 대항하기 위해 3월부터 우버와 유사한 다음카카오의 카카오택시, SK플래닛의 T맵택시, 오렌지앱 등 앱택시 3종을 출시한다. 이들 서비스는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탑승 위치와 목적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점, 승객과 택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점, 그리고 택시기사에 대해 승객이 평가할 수 있는 점 등 모든 측면에서 우버와 유사하다. 오리지널을 잡으려고 정부가 앞장서서 짝퉁을 키우고 있는 꼴이다.

우버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면 우리는 만나는 외국인마다 "우버를 아시나요(Do you know Uber)?"라고 물었을 것이다. 몇 년 전 '강남스타일'이라는 가요가 유행했을 때 외국인만 만나면 강남스타일이 한국 것인지 아느냐고 묻던 것과 유사하게 말이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선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졸부문화'에 대한 풍자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단순히 '한국의 강남'에 대한 노래였다면 싸이는 아직도 한국의 가수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버가 선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공통되게 나타나는 택시업계의 불친절과 승차 거부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력 때문이다.

우버는 한국에서 발을 붙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우파라치, 그리고 기존 택시업계 등 민·관이 함께 단속하니 그 무슨 재주로 성공하겠는가.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우버로 상징되는 새로운 공유경제 시대를 우리가 민족주의라는 안경을 끼고 대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버를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인한 새로운 산업과 기존 산업 간의 충돌로 이해해야지, 외국의 업체가 한국에서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현상으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기술 발전 속도가 예전보다 비교가 되지 않게 빨라지면서 새로운 기술이 야기하는 창조적 파괴의 영향력도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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