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도 인정한 전쟁 고아들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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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이후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 준 알로이시오 신부는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렸다. 부산일보DB

한국 전쟁 후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빈민 구제 활동을 펼친 미국인 선교 사제 알로이시오 슈월츠(Aloysius Schwartz, 1930∼1992) 몬시뇰이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됐다.

(재)마리아수녀회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2일 알로이시오 신부 등 7명을 가경자로 인정하는 교령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가경자는 가톨릭 교회에서 영웅적 덕행이나 순교 사실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으로 복자 칭호를 허가하는 교황의 공식 선언인 시복(諡福) 전 단계다.

'고아의 대부(代父)'로도 알려진 알로이시오 신부는 한국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57년 한국에 와 부모를 잃고 넝마주이가 된 아이들, 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잃은 과부들과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호사업을 펼쳤다.

한국전쟁 후 빈민구제 앞장선
'소년의 집' 알로이시오 신부
'시복 전 단계' 교령 승인 받아


부산 서구의 송도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알로이시오 신부는 한국을 재건하겠다는 꿈을 담아 한국 이름도 소재건(蘇再建)으로 지었다. 이후로 그는 소 알로이시오 신부로 불렸다.

이후 알로이시오 신부는 1964년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했고 1969년에는 서구 송도에 자체 교육기관을 가진 보육시설인 '소년의 집'을 설립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마리아수녀회는 이후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필리핀과 멕시코, 과테말라, 브라질 등으로까지 지역을 확장해 소년의 집을 설립했다. 이로 인해 소년의 집을 졸업한 학생 수는 전 세계적으로 10만 명이 넘는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1975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3년 막사이사이상, 마더 테레사 상을 수상했고, 1984년과 1992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1990년 바티칸으로부터는 고위성직자 '몬시뇰'로도 임명됐다.

그는 아프리카 톤즈에서 헌신적 의료 봉사를 펼치다 생을 마감한 이태석 신부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하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루게릭병 투병 끝에 1992년 3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생을 마감했다.

(재)마리아수녀회 이사장 정영숙(마르티나) 수녀는 "일생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던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삶을 본받아, 앞으로도 모든 수도자가 봉사자의 소임에 충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소영 기자 miss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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