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연중기획 '나눔' 1부 빈곤가정 컨설팅] 5. 허벅지 선천성 림프관종 앓는 여중 1년 주미
친구는 고양이 두 마리, 자전거 타는 게 소원인 열세 살 소녀
"친구들은 어때?"
친구 얘기가 나오자 주미(13·가명·여)는 눈시울을 붉혔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없어요. 있어도 좋을 게 없으니까."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재미있을 여중 1학년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행동 하나하나에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리고 사소한 농담에도 까르르 웃는 주미는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다. 사춘기 소녀에게 있어 존재감이 가장 클 법한 친구가 주미에겐 없었다. 주미는 밖에 나가서는 잘 웃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 수입 100만 원 남짓
수술·성형 엄두도 못 내고
움직이면 염증 탓에 고생
소아 당뇨에 고도 비만 겹쳐
"제 꿈은 평범해지는 것
얼른 커서 엄마 돕고 싶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4학년 때였던가. 친구들한테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주미 엄마 박지희(45·가명) 씨가 사정을 설명했다. "울퉁불퉁 올라온 림프관종의 딱지를 떼줘야 하는데 그걸 안 떼줬더니 냄새가 좀 나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친구들이 주미 곁으로 다가오지 않고 가까웠던 친구도 멀어지고 말았나 봐요. 그 이후로 주미가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아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주미는 엄마가 회사에 가고 없을 때는 집에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논다고 했다.
주미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허벅지에 선천성 림프관종을 갖고 태어났다. 지금까지 모두 6번 림프관종을 긁어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지난 2011년 마지막 수술을 받은 뒤, 그마저도 형편이 좋지 않아 그 뒤로는 받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긁어내는 수술과 성형수술을 함께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비용이 상당할 것이라고만 일러줬다. 한 달 100만 원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는 모녀에게는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였다. 모녀는 수술을 포기했다.
외모에 민감할 나이, 주미는 소아 당뇨에 비만 등 여러 합병증까지 안게 됐다. 키 148㎝에 몸무게 72㎏의 고도비만이 된 주미는 더욱더 움츠러들게 됐고 결국 친구들을 보면 웃지 않는 소녀가 되고 말았다. 또 혼자서 집에 있는 시간 동안 무기력해져 먹는 것에 집착을 보이는 등 주미의 식습관은 점점 더 나빠져 갔다.
주미는 살이 찐 후 체중이 다리에 실리면서 저리거나 아파서 진통제로 잠깐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아끼고 아낀 돈으로 한약도 먹고 있지만, 그마저도 차도가 있진 않아 보인다.
주미의 꿈은 '평범해지는 것'이다. 이는 주미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꿈이기도 하다. "주미 몸이 건강해지고 친구들과도 신 나게 노는 걸 본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박 씨는 주미가 세 살 무렵 남편과 별거를 시작해 주미가 유치원 다닐 때 이혼을 했다. 병원비와 수술비까지 더해 생활비는 다른 집에 비해 곱절 더 들어갔지만, 남편은 월급을 가져다주지 않았고 생활고는 결국 불화로 이어졌다.
혼자라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는데 이혼 후 박 씨 혼자 몸으로 아픈 아이를 거두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결국, 각종 카드 빚, 건강보험료 미납으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개인회생을 신청해 1년에 3번 정도 7만 원씩 갚고 있다.
모녀는 원래 인천에 살았지만, 지인이 부산에 비어 있는 집이 있다고 해 3년 전 부산으로 내려왔다. 좁은 계단을 딛고 건물 3층까지 올라가면 방 하나, 주방 하나, 화장실 하나가 있는 집을 만날 수 있다. 그마저도 이젠 미안해서 더는 못 있겠다며 박 씨는 전세임대주택 신청을 해보려 백방으로 뛰고 있다.
박 씨는 정육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 달 100만 원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소 한 마리를 여기저기 부위별로 쳐내고 포장하는 일인데 남자도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을 박 씨는 해내고 있다. 힘겨웠던 박 씨는 한때 단순 포장을 하는 구인 광고를 보고 전화한 적이 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재봉이나 식당 등 웬만한 일은 안 해본 게 없다.
좀처럼 말이 없는 주미였지만, 엄마의 지난 세월 얘기에 그가 수줍게 말을 꺼냈다. "얼른 커서 엄마 고생 안 시켜드리고 싶어요." 박 씨는 "주미가 언제 이만큼 컸는지 모르겠다"며 또 한 번 눈물을 훔쳤다.
말할 듯 말듯 미소만 짓던 주미가 끝내 밝힌 장래희망은 '만화가'였다. 자주 가는 아동센터에서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뒤 주미는 더 캐릭터 그리는 일에 빠져들었단다. 주미는 만화를 그리는 일이 재미있고 집에서 TV를 볼 때도 만화만 본다고 했다.
몸이 낫게 되면 사춘기 소녀는 뭘 가장 하고 싶을까. 주미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움직이면 염증이 생겨 힘든데 자전거를 타면 정말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주미가 나이에 맞게 여름이면 짧은 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것, 엄마의 꿈도 꼭 그만큼이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