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우리에게 '제2의 국제시장'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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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정초에 인도 첸나이와 뉴델리를 다녀왔다. 자매대학에서 개최한 국제회의에 초청 받아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인도의 거리 모습은 여전히 무질서했고, 어린아이를 앞세운 걸인들의 모습은 빈부의 차가 심각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종교적 이유로 소 떼가 자유롭게 저잣거리를 돌아다니고, 이를 피하려는 자동차는 곡예운전을 했다. 우리 눈으로 보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임에 틀림없다.

겉으로 보기에 무질서한 인도
IT·영어 무기 세계시장 접근

우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
인도판 '국제시장' 만들어 가

방향 잃고 표류하는 우리나라
후손들에게 뭘 보여줄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러한 '후진적' 모습이 인도의 전체상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세상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인도산으로 말이다. 또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자동차는 인도 타타사가 제작한 것들이었다. 타타사가 2천 달러 정도의 '나노(NANO)'라는 차량을 개발하여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도 재계 10위인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자동차의 최대주주인 것을 보더라도 이미 인도는 자동차 대국이다. 각 가정은 단돈 70달러에 살 수 있는 냉장고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정전이 잦은 전력사정을 감안하여 전기가 나가도 장시간 냉동 능력을 발휘하는 신기술이 탑재되어 있다고 한다. 인도 친구에게 들어 보니, 이는 인도 특유의 원칙인 '주가드(Jugaad)'에 기인한 기술 개발이라고 했다. 주가드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대안을 개발하고 이를 창의력으로 보완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면에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미래의 담론을 만들어가는 시도도 많이 엿보였다. 초청 받은 대학의 국제회의장은 배움에 목말라 보이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고, 세계 대학들의 움직임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지식의 보편화 시대에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가부터 한국 대학의 혁신은 어디에 두고 있나까지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같은 시간, 모디 인도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에서는 인도판 다보스 포럼이 열리고 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참석해 혁신과 지식의 공유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현재와 미래를 엮는 작업이 한창임을 체감했다.

한국은 1945년 독립을 한 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선진화와 민주화를 이룬 나라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인도에서도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마도 급성장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도와 같은 나라의 성장이 과거 우리가 이룬 것보다 휠씬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경제성장을 하기 위한 과거의 인프라가 도로와 철도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인터넷 기반과 지식, 그리고 이를 엮어 내는 능력이 인프라인 시대이다. 인도는 이미 IT 기반이 매우 충실하고 영어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세계 지식시장에 무섭게 접근하고 있다. 해외 유수 대학에서 수학한 이공계 전공자들이 속속 귀국해 경제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것은 괄목할 정도이다. 미국 과학자의 12%가 인도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2014년에 발표된 세계은행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인도는 이미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 '국제시장'을 본 관객이 1천2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쟁과 가난을 극복한 많은 한국인의 실제 삶을 그린 영화이기에 국민 감성을 송두리째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땐 그랬지' 하는 공감이 고개를 끄떡이게 했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도 부끄럽지 않았다. 꽃분이네 가게는 서러움과 기다림, 그리고 희생과 고생의 상징인 것이다. 주인공 덕수가 "아버지, 내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하며 흐느끼는 모습은 관객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잘 살아 보겠다는 대다수 국민의 공감적 비전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정부의 비전은 공허하게 들리고, 국민 개개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담론만 난무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정책은 경제주체를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있다. 연말정산 과정에서 보여 주었듯이, 여야 할 것 없이 정치 지도자들은 여론이 흐르는 대로 이쪽저쪽으로 우르르 옮겨다니니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빈발하는 대형 사고는 사회 분위기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최근의 '땅콩 회항'과 어린이집 학대 사건은 한숨조차 나오지 않게 한다.

귀국길 비행기에서 죽을 쑤고 있는 작금의 우리네 현실을 톱으로 보도하고 있는 한국 신문에서 눈을 돌려 창밖으로 펼쳐진 구름을 바라보았다. 급성장하고 있는 구름 밑 인도는 지금 인도판 '국제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과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먼 훗날 후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보아 줄 '제2의 국제시장'을 만들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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