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연중기획 '나눔' 1부 빈곤가정 컨설팅] 3. 심장기형·청각장애·뇌병변·폐렴 시달리는 윤성이
생활고 11남매… 여섯 살 막내 난치병 고통이라도 덜었으면…
서글서글한 눈망울이 참 예쁘다. 방긋방긋 웃을 땐 '천사표 미소'가 따로 없다.
윤성(가명·6)이는 청각장애와 선천성 심장기형 질환을 안고 태어났다. 심장기형 질환은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 심장의 양대혈관인 대동맥과 폐동맥이 모두 우심실과 연결된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이 때문에 윤성이는 두 차례나 심장 수술을 받았다.
엄마·누나·형 온갖 노력에도
병원비·생활비 마련조차 벅차
형제들 취업 막막,학업도 걱정
남다른 가족애 '희망' 필요해요
가혹한 시련은 이어졌다. 네 살 무렵 윤성이는 급성 심정지로 뇌병변장애 판정까지 받았다.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돼 지금도 움직일 수 없다. 윤성이는 그전만 해도 걸어 다니고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네 살부터 종일 누워서 생활해야만 한다. 청각장애가 있는 데다 인지기능도 많이 떨어져 윤성이의 지적 수준은 낮은 편이다.
윤성이는 폐 기능 저하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1년 중 6개월가량은 입원해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도 폐렴으로 호흡곤란을 느껴 입원했다. 한 달만 입원해도 병원비가 150만 원가량 든다.
윤성이는 집에서 생활할 때도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 한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산화탄소가 차서 호흡하는 것이 어렵다. 월 60만 원에 달하는 인공호흡기 대여비도 부담스럽다. 2천만 원에 달하는 인공호흡기를 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집안 형편에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윤성이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과 마찰이 심했던 아버지와 이혼한 상태다. 어머니는 홀로 11남매를 책임져야 했다. 11남매 가운데 기혼자인 첫째 누나를 제외하곤 10남매가 한집에 산다. 결혼했던 둘째 형도 이혼한 뒤 자녀 1명과 함께 윤성이네 집에서 산다. 둘째 형은 전처의 빚으로 최근 개인회생절차를 마친 상태다. 그동안 가정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어머니와 10남매, 둘째 형의 자녀까지 모두 12명이 방 세 개인 집에서 사는 셈이다.
윤성이 가족은 초·중·고생부터 대학생, 구직자까지 다양하다. 대가족이어서 주거비와 생활비도 많이 든다. 윤성이네는 보증금 4천500만 원에 월 60만 원을 내고 산다. 하지만 매달 60만 원 내는 것도 버겁다. 각종 공과금과 집세가 밀려 못 낼 때가 많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집을 비워줘야 할 수도 있다. 2개월 이상 연체 시 집을 비워주기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셋째 누나 윤미(가명·28) 씨는 "현재 사는 집이 대중교통과 가깝고 윤성이가 자주 입원하는 양산부산대병원과 학장동에 있는 재활병원으로 가기가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가족은 많지만, 실질적인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적다는 것이 윤성이네의 고민이다.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은 윤성이를 보살피는데 매달릴 수밖에 없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
그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던 셋째 누나 윤미 씨마저 얼마 전 실직했다. 윤미 씨는 현재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윤미 씨는 어머니와 함께 윤성이를 간호하고 있다.
그나마 넷째 형 동주(가명·25) 씨가 최근 취직을 해서 가족의 생계를 떠안고 있다. 동주 씨가 매달 버는 150만 원의 소득과 윤성이의 장애수당 25만 원으로 버텨나가고 있다. 결혼한 첫째 누나가 적금을 깨거나 카드 대출을 이용해 친정을 틈틈이 돕고 있다. 첫째 누나도 결혼 뒤 몸이 편찮은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성이의 병원비와 대가족의 생활비, 월세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기나긴 생활고의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20대 형과 누나들의 취업이 절실한 실정이다. 다섯째 누나는 4년제 대학 졸업반이다. 청각장애를 안고 있는 윤성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언어치료과를 택했다. 여섯째 형은 군대 부사관시험을 준비 중이다.
초·중·고에 다니는 윤성이의 형과 누나들은 학원에 다니고 싶어한다. 하지만 집안 사정을 생각해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질 못한다. "막내 윤성이가 오랫동안 중병을 앓고 있어 다른 아이들을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해 마음이 아프네요." 윤성이 어머니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윤미 씨도 "윤성이 바로 위의 여동생이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데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며 "전교어린이회장 선거에 나서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며 미안해했다.
이처럼 가족들은 모두 윤성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저마다 희생하는 삶을 살고 있다. 뜨거운 가족애로 삶의 고비를 힘겹게 넘어가는 윤성이네 가족. 이들에게 희망의 햇살이 언제 비칠까.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