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의 수난史] 수감·국외 추방·살해 위협… "우린 내일도 그린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그래피티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가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애도하며 올린 작품이다. 웹사이트 발췌

오노레 도미에(1808∼1879)는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다. 또한 그는 19세기 프랑스 정치와 부르주아 계급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서민의 고단한 삶을 보듬은 시사만화의 원조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특히 당대 최고 권력자인 국왕 루이 필리프를 탐욕스럽고 거식증에 걸린 왕으로 묘사한 만평 '가르강튀아'는 그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 걸작은 한편으로 시사만화의 수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국왕을 비꼰 '가르강튀아'는 결국 해당 잡지사의 문을 닫게 했고, 그도 벌금과 수감이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그랬을까, 시사만화의 수난사는 '표현의 자유'가 한껏 지켜진다는 현대 사회에 와서도 중단되지 못했다. 2007년 스페인 풍자 전문지 '엘 후에베스'는 왕세자의 성생활을 비꼰 만평으로 잡지가 몽땅 법원에 압류됐고, 베네수엘라의 여성 시사만화가인 레이마 수프라니는 정부의 부실한 의료 체계를 최고 통치자의 서명을 본떠 그렸다는 이유로 해고에 이어 국외로 추방당했다.

프랑스 판화가 도미에 수감 사건 이후
해외 각국 시사만화가들 연이어 고초
국내선 고 김상택 화백 피소가 대표적

최근엔 디지털 기술 이용 패러디 인기
"풍자, 사회 건강성 대변하는 바로미터"

시사만화의 수난은 미국에서도 발생했다. 1970년 미국 LA타임즈의 전속 시사만화가인 폴 콘래드는 시장을 비판한 만평 때문에 200만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소송은 나중에 원고 패소 판결로 봉합됐지만, 그는 오랫동안 심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슬람의 무함마드 형상화 금지를 비웃듯 '나는 무함마드를 그려서는 안된다'는 문장을 반복 사용해 그린 르몽드의 무함마드 얼굴 만평. 웹사이트 발췌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만평 필화도 12명의 피살로 뉴스의 초점이 된 프랑스 만평 전문잡지 '샤를리 에브도' 이전에 많았다. 그중 덴마크 유력 일간지 '율란츠-포스텐'의 2005년 무함마드 조롱 만평은 이슬람과의 문명 충돌을 일으키는 큰 사건이었다. 율란츠-포스텐은 당시 이슬람 선지자인 무함마드의 머리에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그림을 실어 이슬람 사회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이 신문 편집국장은 이후 알 카에다의 수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샤를리 에브도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샤를리 에브도는 당시 율란츠-포스텐의 만평을 자신의 매체에 다시 실어 이슬람권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다던 샤를리 에브도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칼럼 속 '표현'을 문제 삼아 소속 시사만화가를 해고했다는 사실이다. 2008년 7월 시사만화가인 모리 시넷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아들에 대해 돈 때문에 유대교로 개종하려 했다고 비판하는 칼럼을 썼는데, 그것이 프랑스 내 유대인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자 그를 해고했던 것이다('더 텔레그래프' 2009년 1월 27일자 인터넷판 기사 참조).


■수난은 국내에서도 있었다

샤를리 에브도처럼 인명 살상의 피해는 없었지만 시사만화의 수난은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상택 화백에 대한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터진 1997년 말, 김 화백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김 전 수석이 감사원 특감을 피해 국외로 도주하려 했다는 내용의 만평이 화근이 됐다. 이 사건은 2000년 7월 대법원의 원고 패소 확정 판결로 종결됐지만 김 화백은 곤욕을 치렀다.

방송사나 대통령이 소송을 제기한 만평도 있었다. M방송사는 2007년 1월 4일 자 D일보 만평에 대해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앞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인 2006년 2월 J일보 만평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풍자의 무기는 이제 모두의 손에

시사만화는 그러나 국내의 경우 더 이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 않다. 시사만화를 싣는 언론사도 많이 줄었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사만화가도 손꼽을 정도가 됐다. 언론중재위원회 통계에서도 최근 10년간 언론중재 신청을 받은 시사만평은 3건에 그쳤다.

그러나 풍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여전하다. 시사만화를 대신해 각종 시사적 예술작품과 패러디 작품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화 포스터나 기존 예술작품을 디지털 기기로 살짝 변형한 '패러디 그림(혹은 영상)'은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에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수난의 대상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2012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부친(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아이를 출산한 모습을 담은 민중화가 홍성담 씨의 '골든타임- 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는 예술작품으로 분류됨에도 여성단체와 정치권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인의 선동적인 패러디도 종종 참사로 기록됐다. 2012년 5월 이준석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목 잘린 패러디 만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의 대상이 됐고,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박 대통령이 모래밭에 '저도의 추억'이라고 쓴 글씨를 '국정원, 내가 시켰다'로 바꿔 패러디함으로써 정치적 파문을 일으켰다.

2011년에는 대학강사 박정수 씨가 'G20 정상회의'의 청사초롱 포스터 위에 쥐 그림을 그렸는데, 검찰이 구속 수사를 엄포하며 나섰다가 "유머와 공포도 구별할 줄 모른다"는 네티즌의 조롱을 샀다.


■풍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풍자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지녔다. 작은 노력으로도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고 통제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간혹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촉발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석환 한국영상대 만화창작과 교수는 "풍자는 사회 건강성을 대변하는 바로미터이자 권력을 견제하는 사회적 균형추"라며 "그러나 풍자가 소수자를 억압하거나 조롱하는 용도로 악용될 때 사회는 오히려 건강성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풍자의 문화는 온갖 수난에도 불구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수자의, 무산자의, 혹은 대중의 저항 무기로 아직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백현충 선임기자 choo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