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우울증] 게임·채팅에 빠진 내 아이, 알고 보니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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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을 맞은 아이가 유별나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면 행동을 눈여겨봐야 한다. '게임 몰입'은 청소년 우울증의 대표적 증세이다.

"아이가 컴퓨터와 스마트폰 게임에서 빠져나올 줄 몰라요."

최 모(47·여) 씨는 겨울방학을 맞은 고등학생 아들의 이상한 행동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임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무척 상한다. 알아서 공부를 곧잘 하던 아이는 요즘 게임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조금 싫은 소리를 건넨다 싶으면 눈을 부릅뜨고 대들어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곱게 말 잘 듣던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김 씨는 요즘 산더미 같은 걱정에 짓눌려 속만 태우고 있다.

과도한 인터넷 몰입 대표적 증세
"짜증 난다" 말에도 주의 기울여야
의지박약 아닌 '뇌의 병' 인식을

■게임 중독은 우울증 경고

아이가 갑자기 게임에 빠져들면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으려 하거나 스마트폰 게임을 놓을 줄 모르는 모습은 바로 우울증의 신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우울증은 드문 현상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박재홍 동아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청소년 가운데 우울증을 앓는 비율은 전체의 5%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적어도 청소년 스무 명 가운데 한 명은 우울증으로 남몰래 힘겨워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과도한 게임, 인터넷 몰입은 청소년 우울증의 대표적 증세다. 우울증에 빠지면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해 스스로 몸부림치게 된다. 청소년들이 우울감을 회피하기 위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다. 나름의 방식대로 게임과 채팅 등에 빠져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 한다.

혹시 어른들로부터 핀잔을 듣게 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받아친다. 그러나 게임에 몰입해 우울감을 떨치려는 방법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잠시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더 심한 우울증세에 빠지게 된다. 또래와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면 더 큰 근심과 불안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청소년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과 다른 경향을 보인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 따라서 '우울하다'는 표현보다는 '짜증 난다'는 말로 힘든 마음을 대신 드러낸다. 친구 학교 부모님 모두가 짜증 나고 싫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짜증 난다'는 말을 사춘기 청소년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불평 정도로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청소년도 많다. 우울증에 지친 아이들이 입 대신 몸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다고 하는데 병원에 가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 거침없이 예전에 하지 않던 일탈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박재홍 교수는 "이른바 비행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는 우울증을 가진 경우가 많다"면서 "청소년들의 이상행동 또는 일탈행동 아래 깔린 우울증을 잘 들춰내 적극적으로 보살펴줘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기는 뇌 완성기

우울증은 뇌와 관련성이 깊다. 사춘기와 더불어 시작되는 뇌의 변화로 인해 청소년기의 특징적 행동 유형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울증을 막으려면 청소년의 뇌가 어떻게 자라도록 해야 할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두 단계에 걸쳐 발달한다. 먼저 출생 전과 영아기에 뇌가 급속하게 발달한다. 이어 청소년기에 이르러 뇌 기능은 한 단계 더 발달한다. 청소년기에는 뇌의 정보처리 속도, 작업기억 등이 집중적으로 향상된다. 결국, 사람 일생에서 뇌가 가장 많이 발달하는 시기는 청소년기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 뇌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선 영양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 뇌도 신체의 일부인 까닭이다. 규칙적인 식사가 가장 좋다. 특히 아침 식사는 거르지 말아야 한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자극도 필수적이다. 청소년들은 단순한 것보다 복잡한 것에 매력을 느낀다. 활기찬 야외활동과 취미생활, 토론 등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컴퓨터, 스마트폰 게임은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자극의 반복일 뿐이다.

운동하면 몸이 튼튼해지듯 몸의 일부인 뇌도 튼튼해진다. 규칙적인 운동을 한 청소년이 같은 시간 공부를 한 청소년보다 성적이 더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따뜻한 관심과 치료를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이는 청소년 우울증과 깊은 관계가 있다.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가 우울증에 빠져 힘겨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잘 살펴봐야겠다. 아이에게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스스로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야 한다. 그러다 '아무 의욕이 없고 죽고 싶을 때도 있다'는 말이 나와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서 치료를 유도하면 된다.

혹시 우울증으로 진단됐다면 '의지'와 '정신력'으로 이겨내라고 강요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아이는 이미 스스로 이겨낼 에너지가 고갈한 기진맥진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우울증은 청소년의 의지가 약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다"면서 "뇌의 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세심하고 따뜻하게 보살피고 치료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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