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BIFF, 뜨거웠던 순간들] 3. 대만 여배우 양궤이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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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고 한국 노래 외워 부른 열정의 '친BIFF파'

대만 여배우 양궤이메이가 2010년 퇴임하는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위해 한복을 차려입고 한국어 가사를 외워 '사랑해 당신을'을 부르는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제에서 게스트 초청분야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게스트들을 초청하기 때문이다.

2014년 부산영화제의 경우 게스트 숫자는 모두 1만 173명에 달했다. 이 중에는 부산영화제가 항공과 숙박을 제공하는 게스트도 있고, 숙박만 제공하는 게스트, 그리고 자비로 참가하는 게스트도 있다. 자비로 참가하는 게스트의 경우 영화제 배지만 제공한다.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72회, 칸영화제는 68회, 베를린영화제는 65회째인데, 부산영화제는 20년밖에 되지 않은 영화제이다 보니 소위 메이저급 국제영화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게스트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게스트와 호스트의 관계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1998년 '구멍'으로 BIFF 인연
다정다감한 성격 안성기 닮아

2010년 '대만영화의 밤'
김동호 위원장 퇴임 기념해
'사랑해 당신을' 우리말 노래

김 위원장 '평생 공로상'
타이베이 시 결정에도 기여


특히 아시아권에서 소위 '부산영화제 패밀리'라 불리는 영화인들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부산영화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이 같은 게스트 중에도 대만의 여배우 양궤이메이(楊貴媚·55)는 좀 특별하다.

1980년 이조영 감독의 '협영류향(俠影留香)'으로 데뷔한 그녀는 리안 감독의 '음식남녀'(1994),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만세'(1994) 등을 통해 대만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오랫동안 그녀와 친분을 쌓으면서 알게 된 그녀의 성품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큼 다정다감하고, 또 소탈하다는 것이다. 국내배우 중에는 안성기 씨와 비견될 정도이다.

2010년 뉴커런츠 심사위원(사진 맨 왼쪽).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그녀가 부산영화제를 처음 찾은 것은 1998년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 '구멍'의 여주인공 자격으로였다. 그 뒤 그녀는 린쳉솅 감독의 '달은 다시 떠오른다'(2005), 에카차이 우엑롱탐 감독의 '쾌락공장'(2007)으로, 그리고 2010년에는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은 바 있다.

또 내가 매년 대만으로 출장을 갈 때는 저녁 식사를 꼭 같이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서, 2010년 부산을 찾았을 때 폐막식 일정까지 모두 마친 뒤 우리 집을 방문하여 미역국 만드는 법을 배워가기도 했다.

그녀는 나뿐만이 아니라, 부산영화제 스태프들과도 친분이 두터운데,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도 그 사이가 각별하다.

2010년. 그해는 김동호 위원장께서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직을 퇴임하시던 해이기도 하다. 그해 양궤이메이는 심사위원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사실 당시 그녀는 여러 가지 바쁜 스케줄 때문에 부산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김동호 위원장의 마지막 해라는 말에 바로 승낙을 했었다.

그런데 부산영화제가 개막하기 한 달 전쯤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부산영화제 기간 중 '대만영화의 밤' 리셉션이 열리는데, 자신이 김동호 위원장을 위해 노래를, 그것도 한국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떤 노래가 좋겠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나는 고민 끝에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노래를 추천했다. 후렴구가 계속 반복되는데다가, 멜로디 자체가 배우기 쉽고 가사도 의미가 있어서 추천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 부산영화제 기간 중 '대만영화의 밤' 리셉션이 열렸고, 그녀는 한국어로 '사랑해 당신을'을 불렀다. 그녀는 한국어 가사를 중국어로 옮겨 통째로 외워서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 멜로디와 가사를 외웠을지 짐작이 갔다. 게다가 그녀는 부산에 와서 한복까지 사서 입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나 역시 그녀가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부를 줄은 몰랐다. 그녀에게 언제 한복을 준비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부산에 도착한 뒤 지인에게 물어 한복을 구입했고, 오로지 리셉션장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그렇게 준비했다고 대답했다.

이날 그녀의 노래가 더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많은 대만 영화인들이 김동호 위원장의 퇴임을 아쉬워하면서 작별인사를 한 동영상까지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김동호 위원장이 감동을 받은 것은 불문가지. 나 역시 감동을 받은 것은 누군가를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그녀의 자세 때문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녀 자신 역시 모두로부터 사랑받고 또 존경받고 있는 것이리라.

이처럼 대만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와 김동호 위원장을 좋아해 주는 마음은 분명 각별하다. 지난해 11월 대만의 타이베이필름커미션(台北市電影委員會)은 금마장영화제 기간 중에 김동호 위원장을 초청하여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영화 발전에 관한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타이베이필름커미션 위원장이자 양궤이메의 절친이기도 한 제니퍼 자오(그녀 역시 부산영화제의 열렬한 지지자이다)는 세미나에 그치지 않고, 타이베이 시에 건의하여 김동호 위원장에게 '영화문화 평생 공로상'을 수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김동호 위원장은 11월 24일 타이베이 시를 방문하여 당시 하우렁핀 타이베이 시장으로부터 '영화문화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타이베이 시가 해외 영화인에게 평생 공로상을 시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시상식장에는 허우샤오시엔 감독, 차이밍량 감독, 배우 리캉생, 그리고 양궤이메이가 참석하여 수상을 축하해 주었다.

그뿐이 아니다. 리젠트 타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에는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첸위쉰 감독, 배우 첸샹치에, 리캉생, 실비아 창 금마장영화제 조직위원장, 제니퍼 자오 타이베이필름커미션 위원장과 양궤이메이를 포함한 100여 명의 대만 영화,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수상을 축하해 주었다. 이 모든 행사는 양궤이메이와 제니퍼 자오의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양궤이메이와의 이 모든 인연은 부산영화제를 통해 시작된 것이다.

부산영화제는 매년 1만 명이 넘는 게스트를 맞이하고, 그중에는 까다로운 게스트도 있지만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게스트도 많다. 양궤이메이가 대표적인 분이다.

부산영화제 일을 하면서 때로는 힘들다가도 이런 분을 떠올리면 미소가 생기고 힘이 난다. '좋은 사람이 모여 인연을 맺는 곳, 부산영화제'. 이것은 부산영화제의 또 다른 얼굴이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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