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제 100년 씨앗을 뿌리자] 2. 변화의 핵심 R&D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싱가포르를 보라… 악화일로 도시 경쟁력 R&D(연구개발) 투자가 답이다

부산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책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R&D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대한민국 산업기술 R&D대전 모습. 부산일보DB

미국 시애틀 부두의 그야말로 미국식 다방에 불과했던 스타벅스는 카푸치노와 라테와 같은 새로운 맛으로 전세계에 커피숍 열풍을 일으켰다. 다음카카오의 보이스톡은 해외에 가족을 둔 기러기 아빠들의 공짜 전화로 시작했으나 국제통신망 업체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 애플의 아이팟은 기세 등등하던 소니의 워크맨을 퇴장시켰다. 이는 모두 혁신적인 사고와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혁신의 결과다. 한 도시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고 과거에 안주한다면 쇠락의 길을 면치 못하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부산 경쟁력 강화 발상을 바꿔야

지금까지 부산은 지역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항만과 도로같은 사회간접자본 건설, 산업단지 조성을 통한 지역기업들의 경쟁력 확보, 중소기업에 저리의 자금 공급으로 금융부담 완화 등을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부산신항이나 항만배후도로, 항만배후단지, 녹산공단, 신호공단, 미음산단,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등이 그것이다.

싱가포르 R&D에 지속 투자
의생명 클러스터 조성 10년 새
전 세계 관련 학자 6천 명 모여

부산 R&D 비중 3.5% 불과
연구원 1인당 연구비 최하위
발상의 전환 없인 쇠락 불보듯

부산시 20년간 30조 투자 의지
선택과 집중 지혜 모아야 할 때

그러나 젊은이들은 부산을 떠나고 부산의 산업경쟁력은 활기를 잃어가고 지역 간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10대 전략산업도 선정해 보았고 또 그것도 많다 해서 5대 전략산업으로 줄여서 육성해 봤지만 각종 통계지표를 통해 나타나는 부산경제는 여전히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청년 일자리를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부산의 발전을 이끌어 온 기존의 정책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사고가 뒷받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부산시의 경제정책은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경제 전문가들이 변화를 위한 혁신이 절실한 시점에 부산이 와 있으며 이 시기를 놓치면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것이라며 입을 모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왜 R&D인가

전문가들은 부산경제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는 R&D(연구개발) 투자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BS금융연구소 김성주 박사는 "지금은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이고 지역 경쟁력의 핵심요소는 지역기업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개발"이라면서 "중요한 것은 지역기업의 R&D 성과가 시장성 또는 경제성 있는 사업으로 연결되고 그 성과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시너지효과를 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부산시가 앞장서서 이 같은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임정덕 명예교수는 "부산시가 현재의 정체 상태를 뚫고 나갈 돌파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R&D"라며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연계 산업과 연결하는 네트워크 또한 R&D를 통해서 구축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산과 비슷한 항구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오늘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것도 일찌감치 R&D 투자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20세기 후반부터 관광산업과 더불어 첨단산업 육성을 국가의 주요산업정책으로 삼아 이를 20년 동안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더 이상 물류 중심, 제조업 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지식기반 혁신경제 국가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이 싱가포르를 이렇게 바꾸었을까? 바로 R&D와 인재육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지난 199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하고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유치해 전략산업을 비롯해 각 분야마다 R&D에 힘써 왔다. 또 전문성을 가진 인재가 있어야 좋은 R&D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R&D의 성공확률이 높다고 보고 대학이나 정부 연구소, 기업 연구소마다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R&D와 인재중심의 혁신 기반위에 지난 2000년 부터는 의생명과학 클러스트를 조성해 불과 10년 사이에 6천여 명의 의생명 관련 과학자들이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세계적인 제약 및 바이오 기술의 클러스터가 조성됐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노바티스, 타게다 등 30개가 넘는 글로벌 의생명 관련 기업들이 바이오폴리스(Biopolis)로 불리는 연구단지와 바이오메디컬 파크라는 산업클러스터에 다 모여있다.

싱가포르의 이 같은 사례는 R&D에 대한 투자를 통한 변화와 혁신으로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대표적 사례이다.

■열악한 부산시 R&D 투자

"부산시가 연간 R&D에 투자하는 예산이 얼마나 되지요?" 지난해 7월 서병수 부산시장이 취임직후 관계 공무원들에 던진 질문이다. 당시 관련 업무 담당국장이나 예산관련 국장이 명확하게 답변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관련 통계조차 잡혀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부산시가 얼마나 이 분야에 무관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우리나라의 지역별 연구개발활동 현황'에 따르면 부산의 R&D 비중은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 경기 등 수도권과 대전이 국가 공공 R&D의 70% 이상을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지역별 기업 연구개발비 비중 52.6%, 지역별 연구원 1인당 연구비 7천240만 원으로 전국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산의 각종 경제성적표가 좋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R&D비중이 현저히 낮다는 것은 부산의 미래가 더욱 암울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실제 R&D활동의 부족→기업경쟁력 저하→우수한 젊은이들의 역외 유출→고령화→복지예산 지출과다→지역개발을 위한 신규투자 위축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재정이 취약한 부산시가 R&D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을 처지가 아니라는데 있다. 자연히 R&D에 대한 투자가 효과적이냐에 대한 논쟁도 있을 수 있다.

R&D에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꼭 그에 비례해 혁신적인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GM, 존슨&존슨 등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IT기업, 제약회사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예산을 R&D에 투자하고 있지만 예전만큼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애플, 아마존, 구글, 테슬라 같은 회사들은 R&D 투자액수가 대기업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훨씬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R&D의 금액도 중요하지만 R&D의 방향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 증명되는 셈이다.

부산의 미래를 위해 R&D 분야에 투자를 하더라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민선 6기 서병수 시장 취임 이후 부산시가 향후 20년간 30조 원의 예산을 공공분야 R&D에 투자하겠다는 이른바 'TNT(Talent & Technology) 2030'정책에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방향설정으로 평가할만 하다.

본보는 부산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ICT 융합, 해양플랜트, 방사선 의·과학, 에너지,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수산식품 등 6개 분야를 R&D 투자 집중대상으로 선정하고 왜 이들 산업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지를 3회부터 순차적으로 진단해본다.

노정현·박진숙 기자 jhno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