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밀양 송전탑 사태 '2라운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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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주민 마음의 상처 그대로 두고 '시험 송전' 강행한 탓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와 반대 주민들이 115번 송전탑 주변에 농성장을 마련하고 3일 현재 9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김태권 기자

'밀양 송전탑 사태 2라운드 돌입?'

한국전력공사의 경남 밀양 765㎸ 송전탑 공사가 지난해 12월 모두 마무리됐지만 주민들의 반발은 새해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 공사는 2008년 착공 이후 우여곡절 끝에 6년 만에 마무리됐지만 이 공사로 촉발된 주민들의 반발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어르신들 목에 밧줄까지 걸고
115번 철탑 앞서 9일째 농성

"사장, 갈등 사태 사과부터"
반대대책위 '3가지 조건' 요구
한전도 "보상 끝났다" 팽팽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이하 반대대책위)와 반대 주민들은 지난달 26일부터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고답마을 115번 송전탑 주변에 설치된 펜스 앞에서 목에 밧줄을 걸어 기습시위를 벌이는 등 9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공사는 끝났지만 주민 농성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뭘까?

■주민이 목에 밧줄을 건 이유는?

지난달 28일 송전탑 선하지 펜스 앞에서 백발인 60∼80대 노인 10여 명이 목에 밧줄을 걸고 경찰과 대치했다. 이 중 3명은 펜스 밑을 통해 송전탑 부지 내로 진입, 송전탑 기둥에 몸을 밧줄로 맨 채 기습시위까지 벌였다. 한동안 잠잠하던 주민 반발이 재개된 것은 한전의 시험전송 때문.

한전은 2008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원전 3·4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보내기 위해 90.5㎞에 걸쳐 765㎸ 송전탑 161기를 건설하는 사업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주민 반발 속에 공사를 시작한 한전은 착공 이후 무려 11차례나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한 끝에 지난해 말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의 마찰은 이미 알려진대로 험악했다.특히 지난해 6월에는 반대 주민들의 투쟁 근거지였던 송전탑 공사 주변 농성장에 대한 밀양시의 강제대집행으로 양 측에서 수십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등 갈등이 최고에 달하기도 했다.

한전은 이런 과정 속에 지난달 28일 오후 3시를 기해 시험 송전을 시작했다.

한전은 시험 송전을 통해 전력 수송의 안전성을 확인한 뒤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다음 달 중에 상업운전에 들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한전이 피해가 예상되는 송전탑 주변 주민들과 협의조차 없었다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반대대책위와 주민들은 지난달 26일 115번 철탑 앞에서 '송전 시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농성에 들어갔다. 3일 현재, 9일째 농성 중이다.

반대대책위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전에 3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한전 사장의 공식 사과다. 한전이 765㎸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분열, 물리적 폭력행위 등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경찰이 발간 예정인 '밀양 송전탑 상황 자료집'에 따르면 주민과 마찰이 본격화된 2013년 10월부터 주민 87명과 경찰 49명 등 총 136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반발하던 주민 2명은 목숨을 끊었다.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 주민과 사회단체 회원 3명이 구속되고 64명이 공사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한전의 주민 매수사건도 뒤늦게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마을 주민 간의 갈등도 심각한 상태다.

둘째, 본격적인 송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재산, 건강상 피해 보전을 전담할 기구를 설치해 피해 상황 전면 실사를 통한 피해 보전도 요구했다.

셋째, 노후 원전이 폐쇄되거나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이 변경되는 등 여건 변화가 생기면 송전탑 철거 약속 등이다.

주민 송 모(여·59) 씨는 "한전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으로 마을공동체가 분열되는 등 여러 사태를 겪었지만 사과와 주민 피해에 대한 조치도 없이 시험 송전에 들어갔다"며 "그동안의 파행과 폭력에 대한 한전의 공식 사과와 주민 생존권 박탈에 대한 피해보전 등 책임 있는 조처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향후 과제는?

한전과 반대대책위는 오는 7일 주민 요구와 관련해 협의를 갖기로 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한전과 반대대책위의 입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지난달 28일 115번 송전탑 펜스 앞에서 목에 밧줄을 걸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전의 공식 사과는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인데다 진행 중인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밀양 등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지난해 10월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과 '전기사업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또 반대대책위도 같은 해 6월 행정대집행 때 경찰이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강제로 내쫓는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데 이어 7월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전은 또 송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피해는 '송주법'으로 해결이 가능하고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직·간접적인 피해는 직접 보상과 함께 송전선로 건설 특별지원에 따라 개별 보상금을 이미 지급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개별보상금 지원 대상 마을과 세대수는 30개 마을에 2천200세대다.

송전탑 철거 문제도 수천억 원을 들여 건설한 송전탑을 여건 변화를 이유로 포기하기가 쉽지 않아 한전 입장에선 수용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 관계자는 "주민 요구에 대한 입장은 현재 정리되지 않았다"며 "반대대책위와 협의를 가진 뒤 입장 표명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대대책위 등은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한전이 지난달 31일 115번 송전탑 펜스 앞 농성장에 공급하던 전기마저 끊어 주민들을 자극하는 등 '밀양 송전탑 사태 2라운드' 가 현실화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주민 260세대가 개별보상금 수령을 거부하는 등 주민들은 송전탑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자파나 소음, 부동산 거래 중단과 같은 재산상 피해에 대해 모니터링한 뒤 진행 중인 소송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피해가 가시화되면 한전에 주민 이주대책 마련도 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사는 마무리되었지만 갈등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김태권·김길수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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