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신년특집 '지역' 달려라, 만디버스] 1 프롤로그 - 산복도로에 혈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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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신년특집] 달려라, 만디버스

'저 빼곡한 공간 속에 내가 있었다!' 산복도로는 자신을 객관화하고, 일상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민주공원을 내려와 혜광고를 지나면 나타나는 동대신동 전망.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釜山)은 산이 많아 부산(富山)이다.

식민과 피란의 아픔에 터잡은 산중턱 마을 좁다란 골목길들, 애써 이길을 다녀간 이들은 그시절 상상도 못했던 풍요를 누리지만 결국 삶이 팍팍해졌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산복도로는 사색과 치유의 길로 떠올랐다. 5년 전 시작된 산복도로 르네상스와 마을만들기 사업은 그길에 문화를 입혔다.

흩어진 산만디 보석들 하나로 꿰어 줄 순환투어 노선 만들자

이제 이 흩어진 보석들을 한 줄로 꿰는 일이 남았다. 산중턱 마을 주민들의 소소한 삶에서부터 격동의 근현대사를 편리하게 둘러볼 수 있는 교통망이 필요하다.

본보가 산복도로 순환 버스 노선 '만디버스'(가칭)를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부산은 다른 중소도시에 비해 근현대 유산이 원도심을 중심으로 매우 넓게 분포해 있다. 걸어서 한 번에 보기 힘든 관광지들을 산복도로 순환 투어 노선으로 이어 주자는 것이다.

마치 낙수효과처럼 만디버스로 산복도로에 내린 사람들이 마을을 둘러보며 체험하고 골목을 따라 평지로 줄지어 내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산복도로 마을의 자립과 자치, 그리고 관광 패러다임이 저절로 바뀌고, 부산의 물질과 정신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렇다. 부산(釜山)은 부산(富山)이다.

올해로 개통 51주년 맞은
부산의 산복도로는
바다 굽어보는 '대형 전망대'

365일 쉼 없이 돌아가며
관광객 실어나르는 동력 필요

미완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만디버스'로 마침표 찍어야


역사의 더께를 아무렇지 않게 허물고 전혀 새로운 것을 뚝딱 지어 올리는 곳, 오로지 첨단과 초현대를 향해 나아가는 부산에서 산복도로는 아직 안녕하다. 동구 중구 서구 사하구 영도구에 넓게 퍼져 있는 산복도로는 부산의 깊이를 더하는 길이다. 올라 걸어보지 않고선 결코 느끼지 못할 삶의 맛이 있는 길이다. 그길을 만디버스가 잇는다.



■산비탈 감아도는 느린 여행

'만디'는 '꼭대기'나 '비탈'을 뜻하는 부산말이다. 만만디(慢慢的)는 느긋한 중국인의 성향을 뜻하기도 한다. 쭉쭉 뻗은 대로가 속도를 위한 것이라면, 좁고 꼬불꼬불하고 때로 경사가 급한 산복도로는 바삐 앞만 보고 가느라 놓쳤던 것들을 호출해 우리 눈 앞에 펼쳐 보인다.

길은 이미 있었다. 올해는 산복도로가 개통한 지 51년째 되는 해다. 부산항 북항과 남항 일대, 공동어시장과 묘박지 등을 굽어보는 산복도로는 대체 불가능한 전망대였다.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가 연결되면서 구경거리는 더 늘었다.

산복도로와 아랫쪽 간선도로·도시철도를 잇는 실핏줄 같은 길은 그곳 시민들의 삶터를 관통한다. 좁고 가파른 계단이지만 쓸모 없어진 고무 '다라이'(대야)나 물탱크를 화분으로 쓰며 재활용품과 나무 모두에 생명을 불어넣는 여유가, 그곳에는 있다.

그뿐인가? 부산시와 구청들은 4~5년 전부터 산복도로 르네상스와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부족한 공공시설물을 확충했다. 그곳 시민들은 마을기업을 만들어 자활을 꿈꿨고, 예술가들이 찾아들어 문화의 향기를 입혔다. 그렇게 산복도로는 역사와 전망대, 인간의 생명력과 여유를 모두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도시재생 모델이자 문화관광 자산이 되었다. 2011년 부산 동구에서 시작된 주말 산복도로 투어버스를 부산시가 지난해부터 중구와 서구로 확대해 운영하는 것도 산복도로에 대한 전국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산복도로를 순환하는 만디버스는 부산의 원도심 위에 흩어져 있는 전망대와 산복도로 마을, 기념관들을 잇는 새로운 '혈관'이다. 버스는 매일 일정한 간격으로 쉼 없이 돌아가며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관광객은 원하는 곳에 내려 놀다 이동하고 싶으면 다음 버스를 타면 된다. 검색과 관광지·교통편 선택의 불편함을 버스 노선 하나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디버스가 태어났다.



■'관광'이 도시재생 이끈다

멈췄던 피가 다시 혈관을 돌면 생명을 찾듯, 산복도로에 관광객이 줄을 이으면 '르네상스'는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그러고 보면 만디버스가 안내하는 산복도로는 그저 구경하고 즐기는 '관광'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 '여행'에 가깝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광안대교나 해운대의 마천루가 아니라, 언덕배기 아기자기한 골목길이다. 그 골목길을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들이 거닌다. 부산 시민이라고 해서 산복도로를 모두 가본 것도 아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산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곳에 서면 '부산은 참 넓다'는 생각에 이른다. 쳇바퀴 돌듯 오갔던 집과 직장, 학교, 마트가 아니라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 그 절경을 삶터로 삼은 억척스러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시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전국적인 도시재생 사업의 모범이 되었지만 아직 미완성이다. 산복도로에 사는 시민들이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문화적·경제적 장치가 절실하다.

만디버스를 이용하는 산복도로 여행자들이 늘어나면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식료품점, 기념품 가게 등은 저절로 골목마다 생겨난다. 그곳 시민들이 뜻을 모아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을 만들어 이런 점포들을 운영할 수도 있고, 독특한 경치와 문화적 토양에서 여행자들의 감성을 일깨우는 예술적 시도도 나울 수 있다.

도시재생은 산복도로 마을에서 그렇게 스스로 꽃피울 것이다.

지역이슈팀=손영신·이호진·이자영·

김한수 기자 issu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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