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잠식된 광복로] 10배로 늘어난 임대료에 30년 전통 빵집도 못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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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산'스러웠던 원도심에서 부산을 지켜온 토박이 상인들이 밀려나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던 매장들도 손을 들고 물러설 정도로 임대료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등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 매장도 밀려나는 판국에 토박이 개인 상인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중심가 월세 5천만 원 선
10년 전 보다 10배 이상

'만남의 명소' 비엔씨도
지난해 광복로 떠나 이전

천정부지 임대료 못 버텨
거리 곳곳에 임시 매장

■30년 전통 빵집도 못 버텼다


광복로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토박이 상인들은 향토 빵집 '비엔씨'의 본점 이전이 '광복로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30년 동안 광복로를 지켜왔던 비엔씨는 지난해 말 임대계약이 끝나 남포동 서울깍두기 인근으로 이전했다. 두 배 가까이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비엔씨는 1983년 설립했으며 부산에서 처음으로 고객이 직접 빵을 고르는 '셀프 서비스'방식을 도입한 명물 빵집이다. 부산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입에도 오르내리며 광복로 본점 1, 2층에는 사람으로 발을 디딜 데가 없었다.

전통 있는 빵집을 잃은 듯한 느낌에 시민들의 상실감은 크다. 광복로를 찾은 시민 유도영(51·영도구) 씨는 "비엔씨 빵집에서 빵을 사 퇴근하는 것이 낙이었는데 광복로에 언제나 있을 것 같았던 빵집이 사라지니 추억도 같이 사라진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비엔씨 맞은 편에 있었던 프랜차이즈 빵집과 비교하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한다. 한 상인은 "프랜차이즈 빵집은 건물 리모델링 후 같은 자리에 다시 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리더라"며 "사람들이 약속 장소로 잡을 정도로 유명한 부산 향토 빵집 대신 프랜차이즈 빵집이 광복로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우리의 광복로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임대료 감당할 곳 대기업 뿐

현재 광복로는 프랜차이즈 업체와 본사 직영점으로 도배되어 있다. 토박이 개인 상인들은 건물 소유주가 아니면 높은 임대료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광복로문화포럼에 따르면 광복로 중심도로에 위치한 1층 30평 건물의 임대료는 최소 보증금 5억에 월세 2천500만 원이다. 하지만 평수가 커지고 목이 좋아질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광복로 중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티 스팟 인근의 건물은 보증금 15억에 월세 5천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10년 전만 해도 광복로의 임대료는 보증금 1억~2억에 임대료 300만~400만 원 선이었다. 10년 만에 10배 이상 임대료가 높아진 셈. 최근에는 임대료가 너무 올라 광복로 핵심지역을 제외하고는 권리금까지 없어지는 추세다.

너무 높아진 임대료 탓에 광복로에 비어있는 점포도 5군데나 된다. 매장이 비더라도 임대료를 내리는 경우는 없다. 차라리 빈점포에 임시매장을 입점시켜 잠시 운영하는 식이다. 이런 임시 매장이 광복로에 10군데나 있다.

광복로문화포럼 관계자는 "광복로는 건물주나 상인들의 거리가 아니라 부산시민의 거리다"며 "건물주와 상인들은 이곳에서 입은 혜택을 다시 광복로에 환원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광복로의 번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천정부지 임대료의 역습

전문가들은 광복로에서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부작용으로 원도심의 활력이 사라질 경우 또다시 활력을 찾기는 어렵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국내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서울 홍대다. 예술가들이 올려놓은 홍대 이미지 덕에 홍대 인근의 임대료 상승으로 지금은 홍대 예술인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광복로에서 희생을 감내한 상인들이 쫓겨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광복로에 새로 자리 잡은 자본이 빠져나갈 경우다. 임대료가 지금 추세대로 올라가면 기업들도 광복로를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광복로에 입점해 있는 본사 직영점과 프랜차이즈 매장도 실제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홍보효과를 감안해 입점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대기업조차도 내수경기 침체로 인해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그냥 떠나버리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내년에도 5~6개 업체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훈전 사무처장은 "건물주들이 이익을 독식하면 결국 그 지역도 다시 황폐화 될 수밖에 없다"며 "건물주와 상인들간 상생의 정신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장병진·민소영 기자 joyful@busan.com



젠트리피케이션

정체지역이 특정한 계기로 활성화되면 자본이 풍부한 사람들이 유입되고 이로 인해 정체지역의 임대료가 올라 지금까지 살고 있던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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