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종의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 24. 오사카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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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노인호 기자 nogari@busan.com

여인과 소녀는 아까부터 해운대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있었다. 바닷가에는 가을의 따뜻한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고,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소녀는 조금 전 모래로 쌓은 성이 파도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뛰어갔다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그리고 모래성이 다 무너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엄마와 함께 만든 그 성은 꽤 컸었다.

다섯 살 먹은 소녀는 단발머리에 두 볼이 발그레했고, 노란색 티셔츠에 파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까만 두 눈이 초롱초롱한 소녀는 너무 귀엽고 예뻐서 그 애를 볼 때마다 아랑은 엄마로서 뿌뜻한 모성애를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고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딸애한테는 아빠가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 돈 많이 벌어올게.할머니 말 잘 들어…"
미혼모가 된 그녀, 술 담배 그리고 몸까지
성형수술 빚의 덫에 걸려 일본 성매매업소로
예쁘고 육감적인 그녀에게 손님들은 줄을 섰다
"넌 우리 조선인의 수치야. 쓰레기 같은 년…"
닥터 킴은 딱 한 번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녀는 딸애를 달랜 다음 옷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백사장에는 여름 한철이 지났기 때문에 바닷물 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외국인들 밖에 없었고, 거의가 산책을 하거나 그냥 놀러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딸애를 번쩍 안아 품에 안고 모래밭을 가로 질러갔다. 이제 딸한테 그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았다.

"은화야, 엄마 있다가 어디 가야 하거든. 며칠 있다가 올테니까 할머니 말 잘 듣고 유치원 잘 다녀야 해. 알았지?"

아이는 싫다고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엄마 돈 많이 벌어올게. 돈을 벌어야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잖아. 은화 장난감도 살 수 있고.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으면 장난감 많이 사올게."

영리한 아이는 그 말에 넘어가지 않고 계속 싫다고 하면서 울었다. 걸핏하면 금방 돌아오겠다면서 떠나곤 하는 엄마한테 속은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랑은 딸아이의 뺨에 얼굴을 갖다대면서 눈물을 삼켰다. 이번에 일본에 가면 석달이나 지나야 돌아올 수가 있었다.

떼를 쓰던 아이는 결국 장난감을 많이 사다달라고 다짐하고 나서야 울음을 그쳤다. 아랑은 자신이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기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부산이 고향인 그녀는 대학을 서울서 다녔는데 2학년에 재학중일 때 미팅에서 만난 의대생한테 반해 덜컥 임신까지 했고, 그의 약속을 믿고 아이를 낳았지만 그는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현재 미국에 가서 살고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미혼모로 아이를 기르면서 서서히 망가져갔다. 아기는 친정 엄마한테 맡긴채 돈을 번다는 핑계를 대고 떠돌아다니다가 가끔씩 집에 들러 양육비랍시고 얼마간의 돈을 내놓은 뒤 아이와 놀아주다가 또 훌쩍 떠나곤 했다.



김해국제공항에는 멤버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멤버는 룸살롱에서 여자들을 관리하는 사내였다. 30대 초반으로 단단한 몸집에 날쌔게 생기고 입이 뾰쪽하게 튀어나와서 여자들은 그를 족제비라고 부르고 있었다. 10분쯤 서성거리고 있자 또 한 여자가 나타나 그들과 합류했다. 그녀는 같은 룸살롱에서 일했던 민주라는 아가씨로 웃음이 헤프고 웃을 때면 잇몸이 드러나곤 했다.

출국수속을 밟기 위해 두 여자가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족제비는 다시 한 번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 강조했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가면 대합실에 남아랑이라고 한글로 쓴 종이를 들고 있는 남자가 있을거야. 그 사람을 따라가면 돼. 3개월만 눈 딱감고 일하면 돼. 자, 잘해봐."

여자들은 그가 내민 손을 힘없이 잡았다가 놓았다.

막상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니 설레임보다는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지고 온몸이 위축되는 것 같았다. 일본은 두어 번 가본 적이 있었다. 두 번 다 룸살롱에 단골로 나오는 돈 많은 남자와 함께 갔었는데, 단지 섹스 파트너로 따라간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가는 것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이번에 가는 것은 순전히 몸을 팔러가는 것이었다. 3개월 동안 매춘을 해주는 댓가로 돈을 한몫에 받기는 했지만 그녀는 그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채 빚쟁이한테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새로운 빚쟁이한테 빚을 갚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생각지도 않았던 미혼모 처지가 된 그녀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신이 무너지고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갔다. 자연 그녀는 술과 담배를 입에 대고 몸을 함부로 굴렸다. 예쁘고 매력적인 그녀한테는 남자들이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을 뻗어왔고, 그녀는 술과 섹스, 쇼핑 같은 것으로 상처를 덮어나갔다. 무질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보니 항상 돈이 궁했고, 일정한 직업이 없었던 그녀는 결국 쉽게 돈을 벌 욕심으로 술집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고급 룸살롱 호스티스 벌이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순전히 웃음과 몸을 파는 댓가로 받는 팁이었기 때문에 수입이 일정치가 않고 들쑥날쑥했다. 거기에 비해 그녀의 씀씀이는 커져만 갔다. 비싼 외제차를 굴리고 철따라 명품 옷가지와 백을 사고, 고급 미용실과 맛사지 업소를 드나들다보니 항상 빈 털터리가 되기 일쑤였다. 거기다 호스티스들 사이에서는 성형 수술붐이 일고 있었고, 거기에 편승해서 마담은 그녀에게 코를 조금 높이고 홀쭉해진 볼살을 도톰하게 올리고 젖가슴을 좀더 크고 탱탱하게 만들어주면 남자들이 환장할거라고 하면서 제발 수술좀 받으라고 그녀를 부추겼다. 그녀가 수술비 걱정을 하자 족제비가 1500만원까지 돈을 빌려줄 수 있으니 걱정할거 하나도 없다고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주면서 말했다. 사실 호스티스들 거의가 빚을 얻어 성형수술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족제비를 통해 1500만원을 빌렸고, 그 돈으로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기는커녕 오히려 더 이상해지고 말았다. 코 끝이 지나치게 뾰쪽해지고, 젖가슴은 좀 커지긴 했지만 균형이 맞지 않고 짝짝이가 되고 말았다. 수술을 세 번이나 더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저러나 빚갚는게 문제였다. 금방 갚을줄 알고 연리 150%의 사채를 빌어쓴게 화근이었다. 빚은 매주 얼마씩 갚아나가기로 되어있었는데, 그것을 못내면 그것이 원금에 더해져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과도한 이자와 교묘한 계산법으로 빚진 사람을 꼼짝못하게 옭아맨 것이다. 여러차례 성형수술 받느라고, 그리고 몸이 아파 좀 쉬었더니 빚은 금방 3000만원이 됐다. 갚을 길은 점점 막막해지고, 그럴수록 사채업자는 끈질기게 독촉전화를 걸어왔다. 나중에는 온갖 욕설을 퍼부으면서 호주나 미국으로 팔아넘기겠다고 위협하더니, 빚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제시한 것이 일본행이었다. 그녀가 솔깃해하자 이튿날 해운대 커피숍에 족제비와 사채업자, 그리고 낯선 사내가 나타나 그녀를 구워삶기 시작했는데, 낯선 사내는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 성매매업소의 한국 연락책이었다.

그 연락책은 뱀 같은 눈으로 그녀의 얼굴과 몸매를 훑어보더니 S급이라고 하면서 3개월 근무조건으로 3500만원을 제시했다. 그 돈은 최고 액수라고 하면서 그녀가 예뻐서 잘 쳐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돈을 단 한 푼도 만져보지 못했다. 일본 업소가 보낸 돈은 족제비를 거쳐 사채업자에게 3000만원이 건너갔고, 남은 돈 500만원도 항공료와 일본 숙식비 등 명목으로 거의 공제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빚은 갚았지만 새로운 빚 3500만원이 일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3개월 동안 몸을 굴려서 갚아야 할 빚이었다.

그녀는 비행기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들은 아득히 먼 곳에서 조그맣게 반짝이고 있었고, 바다 위에 떠있는 공항의 불빛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손에 잡힐듯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랑과 민주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한 마디 말도 없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아랑은 악마가 입을 딱 벌리고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겁에 질려 갑자기 민주의 손을 덥썩 움켜잡았다.

"언니, 무서워."

민주는 굳어있던 표정을 풀면서 금방 씨익 웃었다.

"무섭긴. 일본은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이잖아. 걱정할거 하나도 없어."

그녀는 아랑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그녀의 속삭이는 말에 아랑은 다소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을까?"

"괜찮아. 걱정말래두. 일본 남자들은 착하고 점잖대. 석달만 눈 딱감고 고생하면 돼. 빚갚고도 많이 남을거야."

"그랬으면 좋겠는데. 언니,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마. 어려운 일 있으면 서로 도와가면서 하면 별 문제 없을거야."

두 여자는 새끼 손가락을 내밀어 꼭 낀 다음 그것을 흔들면서 마주 보고 웃었다.



공항 대합실에는 건장하게 생긴 업소 직원이 남아랑이라고 쓴 흰 종이를 들고 서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고 수고들 많았습니다. 앞으로 잘 해봅시다. 김전무라고 합니다."

한국 말을 잘 하는 것이 알고보니 한국인이었다. 여자들을 소형 승합차에 태우고 가는 동안 그는 뭐라고 계속 주절거렸는데 간단히 말하면 시키는대로만 하면 돈도 벌고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가 그녀들을 데리고간 곳은 숙소가 아닌 스튜디오 라는 곳이었다. 거기서 그녀들은 옷을 벗고 각종 음란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들은 항의를 하고 옷을 벗지 않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까지 친절하게 굴던 김전무는 갑자기 표변해서, 몸값으로 3500만원이나 준 이상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여권까지 빼앗았다.

그녀들이 일하게된 된 곳은 데리바리라고 하는 출장 성매매업소였고, 강제로 찍힌 그녀들의 음란 사진들은 그 업소의 홈페이지에 실렸다.

스튜디오를 거쳐 그녀들이 마지막으로 짐을 푼 곳은 오사카 변두리에 있는 13평짜리 조그만 아파트였다. 그곳에는 이미 10여명이나 되는 한국 아가씨들이 합숙하고 있었다. 모두가 빚 때문에 어쩔수없이 떠밀려온 여자들이었다.

아랑은 업소 홈페이지에 실린 자신의 사진들과 인적 사항을 보고는 분통이 터졌지만 결국 어쩔수없다는 것을 알고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거기에는 그녀의 음란 사진들과 함께 신체 사이즈와 나이 등이 공개되어있었고, "한국에서 새로 막 도착한 아름답고 싱싱한 아가씨!""한국 아가씨 최고!"라는 남자들을 유혹하는 선전 문구들이 실려있었다.

새로 들어온데다 얼굴도 예쁘고 신체 사이즈가 육감적이었기 때문에 그녀한테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업소에서의 그녀의 별칭은 라라였는데, 손님들은 전화를 걸어 라라만 찾았고, 라라를 몇시까지 어디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면 업소 직원이 그녀를 차에 태워 그곳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첫날 그녀는 무려 열네 명이나 되는 사내들을 상대했는데 한 명을 상대하고 나오면 그 자리에서 쉴 틈도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도 했다. 그날 맨마지막 손님은 새벽 4시경에 전화를 걸어왔다. 지쳐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져있는데 업소 직원이 그녀를 두드려깨워 어디론가 데리고갔고, 정신을 차리고보니 바닷가 별장 같은 곳이었다. 별장은 크고 호화스러워 보였다. 내부 장식이며 가구들이 하나 같이 고급스러워 보였고, 으리으리한 분위기에 그녀는 주눅이 들었다.

그녀를 부른 사내는 마흔 안팎으로 뜻밖에도 한국 말을 잘했다. 중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였고, 눈매가 날카롭고 비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눈웃음을 칠 때는 그 같은 인상이 허물어지곤했다. 그는 자기를 소개하기를 재일 조선인으로 닥터 킴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재일교포가 아닌 재일 조선인임을 강조했다. 북한도 남한도 싫고 일본은 더욱 싫기 때문에 자기는 국적이 없는 조선인으로 남아있는거라고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자기는 제4의 사나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아랑은 시간이 흐르는 것에만 신경이 쓰였다. 시간당 화대는 2만5000엔이고, 조금이라도 초과하면 추가요금을 받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자칭 조선인은 옷을 벗으려고도 하지 않은채 요상한 말만 했다.

"난 섹스를 직접하지 않고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관음증 환자라고 생각해도 할 말은 없어요. 그걸 아주 잘 하는 녀석이 있는데 돈을 주고 고용했으니까 한 번 만나볼래요? 내가 보는데서 그 놈하고 한 번 신나게 놀아봐요."

아랑은 펄쩍뛰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그가 꺼내놓은 돈을 보고는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세 시간을 빌리기로 하고 그 요금으로 7만5000엔을 내놓았고, 거기다 특별요금으로 10만엔을 추가로 보탰다. 그 10만엔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나타난 사내를 보고 그녀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는 오랑우탕처럼 생긴 새카만 흑인이었다. 덩치도 크거니와 그 물건 또한 장대해서 그녀는 그 밑에 깔려있는 동안 혼절하고 말았다. 닥터 킴은 가까이서 섹스 장면을 유심히 구경하기도 하고 비디오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기도 했지만 그녀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둘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인기가 좋아 매일 10명 이상씩을 상대했다. 며칠만에 그 짓에 지치고 넌더리가 난 그녀는 자신이 과연 석달 동안 무사히 배겨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려다니다보니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고작 서너 시간 밖에 되지 않았고, 온종일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마치 무슨 물건처럼 배달되곤 했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그 데리바리의 주인은 한국 여자였다. 그녀는 기둥서방으로 일본인 남편을 두고 있었고, 빚으로 묶어 한국에서 데리고온 70여명이나 되는 여자들을 마치 사육하는 짐승처럼 쉴틈을 주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마구잡이로 굴렸다. 그렇게 해야만 투자한 돈의 두 배 세 배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리 때도 손님을 받게했고, 성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는 대신 멋대로 항생제 주사를 놓곤했다. 하도 악랄하게 굴어서 여자들은 그녀를 서슴없이 흡혈귀라고 불렀다.

손님들 가운데에는 이상한 짓을 요구하는 변태들이 많았다. 그런 요구들을 일일이 들어주지 않으면 손님들은 업소에 전화를 걸어 불만 신고를 했고, 업소 측은 해당 아가씨를 두들겨패고, 그것도 모자라 빠킹 요금이라고 해서 수만엔씩 벌금을 물리곤 했다.



그 일을 시작한지 보름쯤 된 어느 날 새벽 아랑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바닷가 별장으로 실려갔다. 닥터 킴을 본 순간 오랑우탕처럼 생긴 흑인이 생각났고, 그러자 금방이라도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닥터 킴은 그날만은 오랑우탕을 부르는 대신 그녀에게 정성들여 차를 대접했다. 아주 질이 좋은 고급 차라고하면서. 그녀는 녹차처럼 보이는 차를 한 잔 마시고나자 정신이 몽롱해져왔다. 그때 그가 그녀의 귀에다 입을 가까이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넌 우리 조선인의 수치야. 일본까지 건너와서 일본놈들한테 가랑이를 벌려주고 돈을 받다니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쓰레기 같은 년-----."

그 말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자식이 있어. 그것도 못하고 구경만 하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사내의 목소리가 잔물결처럼 귀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우리는 우리 조선인을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을 찾아내 처벌하고 있는데 너한테는 사형 언도가 내려졌어."

그녀는 야구 방망이가 머리 위로 높이 쳐들려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막기 위해 두 손을 쳐들려고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닥터 킴은 딱 한 번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것이 그녀의 뒤통수에 부딪쳤을 때 딱 하는 울림이 한 번 있었고, 그녀는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는 그녀의 옷을 모두 벗긴 다음 아직 숨이 붙어있는 그녀를 욕실로 끌고갔다.

잠시 후 욕실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그의 손에는 전기톱이 들려있었다.



일본 경찰이 오사카와 교토, 고베, 나라 등 간사이 일대에서 발견된 여자 토막 시체를 한 곳에 모아서 한 여자의 사체로 맞춰서 신원까지 알아내 공개한 것은 일 주일쯤 지나서였다. 피살자의 신원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알아낸 것은 입국시 등록된 지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경찰은 단서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피살자인 한국인 여자가 일본에 와서 불법으로 매춘을 한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과연 얼마나 성의를 가지고 수사를 할지는 의문이었다.

"아랑은 자기가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을 해운대 바닷가에 뿌려달라고 했어요."

민주는 화장한 유골을 안고 떠나는 아랑의 노모를 간사이 공항까지 따라나와 배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랑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어느 날 밤 술에 취해서 울다가 느닷없이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유골을 품에 안고 있어 더욱 조그맣게 오그라들어 보이는 노파의 모습이 출국장 저쪽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민주는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흔들었다.



다음 날 오후 아랑의 노모는 외손녀를 데리고 해운대 바닷가에 앉아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바다는 검은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소녀는 모래로 성을 만들다가 그것이 파도에 쓸려가자 엄마를 찾으면서 울다가 잠이 들었다. 노파는 눈물도 말라버려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조그만 단지 안에 들어있는 뼛가루를 모래밭에 뿌렸다. 그러자 부근에 있던 갈매기와 비둘기들이 기다렸다는듯 떼지어 날아와 날개를 파닥거리는 바람에 뼛가루는 공중으로 뿌옇게 흩어졌다.

"안 돼! 저리 가, 이것들아!"

노파는 허둥지둥 일어나 새들을 쫓아냈다. 새들이 딸의 뼛가루를 모두 먹어치우면 딸이 가만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새 모이 밖에 안 되는 딸이 너무 불쌍했다.

■후원:부산 해운대구


김성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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