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량 기준 없는 원전 폐기물 규제… 농도만 맞추면 무한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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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서 배출하는 액체 폐기물의 배출 규제가 턱없이 허술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이 내려다 보이는 월내어항 남방파제에서 시민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 부산일보DB

부산 고리원전 등 원자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액체 및 기체폐기물의 배출 규제가 미비해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내 13개 원전에서 지난 10년간 배출한 액체·기체 폐기물의 방사능량은 총량 기준으로 6천조베크렐(Bq), 밀리시버트(mSv)로 환산하면 10억mSv에 달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 등에서 제공하는 관련 정보는 농도 기준이어서 인체 위해성에 대한 우려를 축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13개 원전에서 10년간
방사능 10억mSv 배출
한수원, 농도 정보만 제공
고시의무·보상의무 없어

국회 미방위 정호준 의원
허술한 규정 개정 촉구

■총량 배출 기준 없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원전 주변 방사능오염 저감 및 안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액체·기체폐기물에 대한 총량 규제와 고시 의무가 없다보니 필터로 거르거나, 바닷물을 섞어 인체 유해 농도 기준 이하로 맞추기만 하면 오염물질을 아무리 자주 방류해도 별다른 문제를 삼을 수 없는 것이 현행 규정이다.

총량 기준으로 지난 10년 간 국내 원전에서 배출된 10억mSv의 방사능량은 성인 1인당 한해 방사능 노출 기준치가 1mSv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액체·기체폐기물에 가장 많은 핵종인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12.3년이다. 배출된 방사능 물질의 상당량이 공기 중에 혹은 바다 중에 떠돌고 있다는 것이 정 의원의 주장.

여기에 한수원이 이같은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재 한수원이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제공하는 액체·기체폐기물 양은 농도 기준이어서 실제 배출총량과 비교하면 대폭 축소돼있다. 또 이러한 내용도 홈페이지가 아닌 연결페이지의 하위 메뉴로 표시하는 등 접근성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의원 측은 "한수원이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자연 중에 방사하면서 국민에게는 그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며 "이는 국민을 기만하고,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피해가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제한치 이하 농도면 무해?

문제의 핵심은 이같이 배출되는 액체·기체폐기물이 주변 지역 주민들의 인체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이다.

원전에서 발생되는 기체 상태의 폐기물은 고성능 미립자 제거필터와 활성탄 여과기를 통과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기준치 이하로 방사능의 세기를 충분히 약화시킨 후 방출되며, 액체상태의 폐기물 역시 증발기 또는 이온교환설비 등을 통해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 뒤 발전소 냉각수(온배수)와 함께 바다로 배출되고 있다.

한수원 측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배출되는 국내 원전의 기체 및 액체폐기물에 의해 발전소 주변 주민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사선량은 1년에 기체는 약 0.015mSv, 액체 약 0.000064mSv 이하로 자연상태에서 받는 개인 선량이 연간 2.4mSv임을 감안하면 주민이나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단정한다.

이와 관련, 토론에 나선 원자력안전기술원 김용재 박사도 "최근 원자력시설 주변 어류나 토양에서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냉전시대 핵실험의 잔존 영향으로 보인다"며 원전과의 연관성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원자력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방사능 노출에 안전한 양은 없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이날 토론에 주제발표를 한 (사)환경과 자치연구소 서토덕 기획실장은 "전세계 60개 연구 보고서에서 원자력발전소와 주변 지역 어린이의 백혈병 발병과의 인과관계가 확인되고 있다"며 "적은 양이라도 만성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부산 기장군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과 삼성병원의 모든 암 진단율보다 기장군민의 갑상샘암 한 개 종만을 진단받을 확률이 더 높고, 지난달 17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이 '원전 주변 지역민의 암 발병이 이와 유관하다'고 내린 판결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동부지원 승소 판결의 주인공인 이진섭 씨는 이날 토론에서 "원전 주변 지역민의 불암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속히 원전 주변 지역 주민의 갑상샘암을 비롯한 질병에 대해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원전의 방사성 폐기물 규제책이 이처럼 허점이 많은데도 정부는 2008년 이후 방사성폐기물관리법상의 의무인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작성치 않고 있고, 한수원은 제대로 된 고시나 환경부담금 등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총량규제를 도입하는 방법 등으로 한수원 자체적으로 저감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 의원은 조만간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으로 하여금 액체·기체폐기물의 배출량, 핵종, 배출일시 등을 정기적으로 고시토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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