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권하는 사회, 방사선 권하는 사회] ⑥ 해외 전문가들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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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피폭' 잇단 경고음 … 의료계 각성, 정부 대책 서둘러라

암 진단이나 치료 목적이 아닌 단순한 건강검진단계에서부터 CT(전산화단층촬영)와 PET CT(양전자방출 전산화단층촬영)가 남용되는 현실과 개선 정책에 대해 짚어본 'CT 권하는 사회, 방사선 권하는 사회'가 지난 4일부터 총 5회에 걸쳐 보도됐다. 의료 방사선이 남용되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해외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들 전문가는 남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의료 방사선 저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의료 방사선에 대한 위험성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의료 방사선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리처드 에반스

"의료 방사선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리처드 에반스(50) 영국 방사선기사협회(Society and College of Radiographers) 대표는 "의사와 방사선기사, 학자, 정부가 의료 방사선에 대한 이해와 관리에 대한 공감대를 함께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사선기사협회는 1920년대 말 결성됐다.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의료 방사선 피해문제가 지속적으로 야기되면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의료 방사선 남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회원은 2만 6천 여 명에 이르며, 외국인 500여 명도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의사들 상당수도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돼 있어 의사와 방사선 기사 간에 의견 교환이 활발하다.

에반스 대표는 "영국은 공공의료체계 속에서 의사와 병원, 학계, 정부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민간의료체계 역시 이해관계에 묶여있을 것이 아니라 시민이 불필요한 의료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자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협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에반스 대표는 영국의 민간 의료보험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다. 규모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국민의료제도) 10% 수준에 불과하지만, 의료 방사선 남용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관리대상 영역이 아니다 보니 NHS에 포함돼 있지 않은데다 NPDD(National Patient Dose Database, 국가 환자 방사선량 데이터베이스)에 기록 의무가 없어 자료도 공유되지 않는단다.

이에 방사선기사협회는 정부를 대상으로 개인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사립병원에 대한 관리를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에반스 대표는 "정부가 10%에 해당되는 민간 의료에 대해서도 데이터를 확보하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가할 것"이라며 "한국 역시 데이터를 통해 국민 1인당 의료 방사선을 관리할 수 있도록 민간병원들을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에반스 대표는 또 국민들에 대한 의료 방사선 홍보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영국 역시 비중이 적기는 하지만 민간 의료보험 시장이 있는 만큼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에반스 대표는 "CT나 PET CT는 치료 목적으로 꼭 필요한 장비지만, 가족력도 없고 증상도 없는 시민이 스스로 촬영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시민들이 피폭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의사 등 관련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사키야마 히사코

"학교와 정부가 바뀔 수 있도록 시민들이 힘을 내야 합니다."

사키야마 히사코(75) 박사는 일본 준 정부기관인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다가 은퇴 후 의료 방사선 관련 시민단체인 도쿄의 '다카기학교'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사키야마 박사가 처음부터 의료 방사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키야마 박사는 일본으로 돌아와 NIRS에 취직한 이후 줄곧 암 연구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은퇴하기 1년 전 신문에서 다카기학교를 세우려는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를 접하고 그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의기투합했다.

의료 피폭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것은 2004년. 당시 영국에서 일본의 의료 피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지만 정작 일본 정부에서는 의료 피폭을 담당하는 부서조차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단다.

이후 사키야마 박사는 다카기학교 동료와 함께 이듬해 의료 피폭선량 기록수첩을 제작해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또 2008년에는 '엑스레이, CT 검사 의료 피폭의 위험'을 펴냈다. 이는 시민들의 큰 관심을 불러모아 수차례 개정판이 나왔고, 올해 초에는 대형 출판사에서 다시 찍어내기도 했다.

사키야마 박사는 "10년 가까이 꾸준히 시민들을 대상으로 책과 잡지, 강의 등으로 의료 피폭의 위험성을 알리다 보니 지금은 꽤 많은 시민들이 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열어 의료 방사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가 의료 피폭보다 낮으니 걱정 안해도 된다는 일본 정부의 논리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비판하는 사키야마 박사는 "아이들이 방사선 및 의료 피폭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우선 바뀌어야 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바뀔 수 있도록 시민들이 뭉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례로 후쿠시마산 먹을거리에 대한 방사선 검사에 미온적이던 일본 정부가 시민단체들이 나서 검사를 실시하고 정보를 공개하자 결국 방사선 검사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사키야마 박사는 "정부로부터 새 정책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시민의 힘"이라며 "정부가 의료 방사선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 시민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곤도 마코토

"의사들도 의료 피폭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곤도 마코토 암 연구소를 운영 중인 곤도 마코토(64) 소장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선 피폭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훨씬 더 위험한 것은 CT 검사 등에 의한 '의료 피폭'이라고 강조했다.

게이오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한 뒤 귀국해 암 치료에 전념한 암 전문의이자 방사선과 의사인 곤도 소장이 CT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의료 피폭으로 인해 암 발생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곤도 소장은 저서 '시한부 3개월은 거짓말'에서 45세 성인의 경우 전신 CT를 한 번 받는 것만으로 1만 명 중 8명(0.08%), 30년 간 매년 CT검사를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에는 1만 명 중 190명(1.9%)이 피폭에 의해 암이 생겨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받는 건강검진이 되레 암 환자를 양성하는 꼴이다. 그는 일본의 경우 CT 등 의료 피폭으로 인한 암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매년 1만 3천500명이라는 추정치도 있다고 덧붙였다.

왜 의료 피폭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는 의료 종사자 상당수가 환자와 환자의 가족에게 의료 피폭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건강검진의 장점만 부각시켜왔다고 꼬집었다.

이에 법적 규제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의사들 역시 바뀔 것을 주문했다. 촉진이나 청진 등 진찰 능력을 키우는 대신 CT나 PET CT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란다.

그는 "의외로 의료 피폭에 대해 무관심한 의사가 상당수"라며 "의료 사고에 대비한다거나 병원 수익을 고려하는 것에 앞서 무턱대고 CT를 찍으려는 환자에게 의료 피폭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들의 인식 전환이 시급한 과제"라고 언급했다.

곤도 소장은 CT 및 PET CT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또다른 책을 집필 중이며, 내년 3월께 발간 예정이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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