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가 '설국열차'를 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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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문명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부산일보 DB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타면서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시선집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를 가져갔다. 시선집에 실린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이란 시가 눈에 띄었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문학·음악·미술·건축·영화
사회학의 눈으로 들여다보기

봉준호 감독 세계의식에 주목
고흐 그림에 담긴 자아정체성
사회상 반영한 예술 세계 분석


이 시는 사회학자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그는 시에서 타인의 발견과 성찰이라는 사회학의 주요 주제를 떠올린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한, 타자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풀어내는 일은 어떤 사회에서든 일차적인 과제다. 비록 정치적 이념은 달랐지만 카를 마르크스와 에밀 뒤르켐으로 대표되는 고전 사회학자들은 타자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연대'를 누구보다 중시했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푸코는 철학적·사회적·정치적으로 배제되어 온 타자를 다루는 기존 지식체계를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이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선물하는 것을 평생 학문적 과제로 삼았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최대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 사회의 위기라고 본다. '1 대 99 사회'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소수의 승자 뒤편에 다수의 패자가 놓여 있는 게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예술로 만난 사회 / 김호기
저자는 공동체 위기를 가져 온 가장 큰 원인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을 가장 중요한 원리로 삼아 '이기적 시민사회'를 재생산해 왔다. 이는 경쟁을 극단으로 몰고 가 사회통합을 약화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의미를 위협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정신은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연대가 공존하고 결합하는 '연대적 개인주의'에 있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다.

저자는 '예술로 만난 사회'에 실린 문학, 음악, 미술, 건축, 영화 등 예술에 관한 50편의 에세이를 통해 예술의 일차적 의미가 공감과 위안이라고 말한다. 사회와 완전하게 괴리된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예술은 일정하게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것이 주된 시각이다.

이러한 관점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글에서도 이어진다. 저자는 영화를 보면서 두 명의 사회학자를 떠올린다. 한 사람은 독일의 막스 베버. 베버는 모더니티의 사회이론가다. 그는 과학과 관료제가 갖는 양면성에 주목했다. 베버는 과학과 관료제가 합리성의 증대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규제하는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다른 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 그는 1990년대 초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해 신봉건주의, 민주주의적 파시즘, 탈중심화된 평등주의적 세계질서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탈중심화된 평등주의적 세계질서는 인간의 집합의지가 구현된 유토피아적 전망이다. 저자는 현재 세계 자본주의는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이 커지면서 신봉건주의와 민주주의적 파시즘이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돌베개 제공
저자는 '설국열차'에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사회에 대한 봉준호의 문제의식을 주목한다. 개인은 시스템의 부속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게 열차라는 '쇠로 만든 새장' 사회를 유지하는 논리다. 이 시스템 바깥으로 나가려는 시도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영화는 그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지속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한 사회 생태계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자아정체성 발견과 연결짓는다. 검푸른 밤하늘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달과 별처럼, 예술에 대한 고흐의 열정을 담은 작품이다. 저자는 작품을 통해 오늘날 현대인의 삶, 자아, 정체성이 처한 상황을 언급한다. 많은 사람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해졌다.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주의가 낳은 '소외', 베버는 합리화가 가져온 '쇠로 만든 새장', 하버마스는 체계의 과도한 발전에 따른 '생활세계의 식민화'로 규정했다. 자신이 더는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님을 문득 깨달을 때 인간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자기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시도를 낳는다.

저자는 "고흐의 작품이 사회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말한다. 고흐는 화폭에 자기의 느낌과 생각, 삶을 담아냈다. 고흐는 대상의 완벽한 재현보다 그 대상에 대한 내면 풍경을 자기 방식으로 표현했다. 끝없는 고투 속에 그려 낸 풍경과 인물이 그가 견뎌 낸 고독의 삶을 떠올리게 하기에 고흐 작품은 지속적인 울림을 준다. 사회학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예술론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김호기 지음/돌베개/316쪽/1만 5천 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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