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권하는 사회, 방사선 권하는 사회] ③ 엄격한 관리 시스템 갖춘 영국
공중보건국서 5년마다 병원별 피폭량 집계해 DB 구축 관리
우리나라는 무분별한 CT(전산화단층촬영) 촬영으로 불필요한 의료 방사선에 노출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무상의료 체계로 이름난 영국은 인구 100만 명당 CT 수가 2012년 현재 8.7대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의료 방사선을 주로 연구하는 영국 공중보건국(PHE: Public Health England)를 찾아 해법을 들어봤다.
■1인당 평균 방사선량 0.4mSv 유지
PHE는 의료 방사선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 정부와 공공의료 체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국민의료제도)에 정보를 제공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과학자와 연구자, 공중보건 전문가 등 5천 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다. 공중 보건시스템과 전문인력 개발을 위해 지자체, NHS와도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환자 피폭 방사선량 기록 의무화
권고기준 넘을땐 해당 병원에 통보
단순 검진 목적으로 CT 촬영 안 해
가이드라인 마련에 전문가들 앞장
PHE 전신은 국립방사선보호위원회(NRPB)다. NRPB는 영국 정부가 방사능 노출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1970년 설립했다. 2004년 들어 NRPB는 건강보호청(HPA)으로 바뀌었고, 2013년 PHE로 전환해 방사선 관련 자문 역할 등을 수행 중이다.
PHE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지난 50년간 엑스레이를 포함한 방사선 검사가 크게 늘었다. 특히 최근 25년간 CT 촬영 역시 꾸준히 증가추세다. 2011년 기준 연간 의료 방사선 촬영건수는 400만건이며, 이 중 CT와 PET CT(양전자방출 전산화단층촬영) 촬영은 8~10%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인구 1인당 평균 방사선량은 2011년 0.4mSv(밀리시버트)에 머물 정도로 방사선 검사에 대한 환자보호가 강화됐다.
이처럼 영국이 방사선량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국가 환자 방사선량 데이터베이스'(National Patient Dose Database, NPDD)의 힘이 크다. 1992년 도입된 NPDD는 의료 방사선 검사 때 환자에 피폭되는 방사선량을 계산해 차트에 의무적으로 기록하게 하고 연간 피폭량을 따져 검사받도록 하는 제도다. 일상적으로 흔하게 사용되는 일반 방사선 촬영과 투시 방사선 촬영검사에 대해 영국 전역의 병원에 걸쳐 환자 방사선량 측정값을 수집하기 위한 의도로 마련됐다.
PHE 의료방사선량 그룹에서 5년에 한 번씩 병원별로 데이터를 수집·분석한 뒤 일정량 이상 권고기준을 넘어서면 피폭량을 줄일 것을 해당 병원에 통보한다. 처음에는 병원과 의사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의료 방사선 관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은 완전히 정착돼 각 병원에서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이 덕분에 1인당 방사선 피폭량이 크게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PHE 의료방사선량 그룹을 이끌고 있는 수 에드아이븐 박사는 "불필요한 의료 방사선 피폭을 줄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끝에 의료 방사선의 상당량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병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중복 촬영 여지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5년과 2010년 환자 방사선량을 비교했을 때 5년간 엄격한 관리에 따라 의료 피폭량이 30% 정도 줄었다.
■피폭량 줄이기에 합심
영국은 기본적으로 단순 검진 목적의 CT 촬영은 허용하지 않는다. PHE 의료 피폭 규제 인프라팀의 수장인 스티브 에브든-잭슨 박사는 "영국의 경우 가족 내력이 있거나 의심 소견이 있을 때에는 CT나 PET CT를 촬영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단순한 진단 목적으로 CT 등을 촬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의료 방사선은 치료 목적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브든-잭슨 박사는 또 "영국에선 일반인들이 의료 방사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사와 병원은 물론 방사선 기사, 과학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방사선량 기준을 정하고 국민들이 의료 방사선에 불필요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기록하고 연구한다는 것이다.
노후 장비 관리도 마찬가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조건 교체하라는 정부 방침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설정돼 있는데다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보통 7~8년이면 노후 장비로 보고 교체하고 있다.
NHS의 진료본부장 에리카 덴튼 교수도 "의료 피폭은 방사선량 한도가 없기 때문에 방사선의학학회에서 수년 동안 의료 방사선 피폭 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 작성에 매달렸다"며 "가능한 한 최저 방사선으로 CT 촬영을 통한 검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규제장치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런던·옥스포드쉐어=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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