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국도 팁런 에깅낚시] 연안 무늬오징어 가뭄 소식에, 먼바다로 떠난 대물 사냥
올해 무늬오징어가 가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조금 나온다 싶으면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서 입질을 닫아버리니 그런 모양이다. 에깅이라는 장르가 널리 보급돼 너도나도 잡아내니 자원 고갈이 원인일 수도 있다. 연안에서와는 달리 먼바다에는 대물 무늬오징어가 나온다는 소식에 '팔랑귀'를 세우고 통영 국도로 냉큼 달려갔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대물 무늬오징어가 많았다. 하지만 낚아야 내 것이 된다.
■일찌감치 선실에 자리 잡고
무늬오징어가 제철을 맞았는데 폭발적인 조황 소식은 없던 차에 선상 에깅에서는 마릿수 보장이 된다는 소식이 더러 있었다. 하도 많은 도보꾼들이 연안에서 낚싯대를 흔들어대니 '고구마급' 작은 오징어도 편히 살 자리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겠다. 무늬오징어는 1년만 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늦여름에 성장해 겨울을 나는 놈들은 깊은 수심의 바닷골로 모여든다는 것이 정설이다.
통영 미륵도를 출발한 에깅 전용 낚싯배를 타니 한 40분 이상 달려야 한다고 해서 미리 선실에 자리를 잡았다. 장비 세팅을 마친 두 사람이 막 채비를 하는 취재진을 물끄러미 쳐다 본다. "오징어 많이 해 보셨어요?" 이럴 땐 먼저 묻는 것이 어색함을 줄이는 비결이다.
"거제에서는 좀 해 봤는데 통영은 처음입니다. 국도 간다고 해서 휴가 내고 왔어요." 평일인데도 승선 인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열혈 마니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욕지도나 거제도 일원에서 에깅을 하는데 조황이 신통찮아 먼바다로 나가면 어떨까 싶어 수소문을 해서 통영 국도로 가는 배를 찾았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를 대고 회사에 휴가를 냈기 때문에 이름도 묻지 말아달라고 청탁(?)했다. 그래도 얼굴이 잘 안 나오는 선에서 모델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미륵도에서 직선거리로 25㎞ 정도 떨어진 작은 바위섬인 국도는 예전엔 민가가 몇 채 있었으나 지금은 모 종교단체가 사들여 생활하는 곳이다. 그래서 여타 원도권 섬과 다르게 7~8층 정도 돼 보이는 호텔 같은 대형 건물 한 채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본섬에 인접한 작은 섬과는 구름다리까지 연결돼 있어 독특한 풍경을 연출했다. 낚시는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국도의 북쪽에서 시작했다. 조금 물때인데도 생각보다 조류가 거세 채비가 바닥에 잘 닿지 않았다.
■옮길 때마다 한 마리?
진해에서 왔다는 김연명 씨는 "팁런 에깅은 마릿수가 좋을 땐 한 배에 400마리도 올라온다"고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했다. 10명 정원이니 평균 40마리라는 계산이 나왔다. 더구나 씨알까지 굵다니 그동안 못 본 무늬오징어를 실컷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배가 한참이나 조류를 따라 떠내려갔는 데도 입질이 없었다.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선장은 다시 처음 자리로 이동을 했다. 배 고물 쪽의 닻을 놓은 모양인지 뱃머리가 조류 방향으로 흘렀다. 그런데 컴컴한 바다에서 갑자기 기름띠 같은 것이 뭉싯뭉싯 조류를 따라 흘러갔다. 처음엔 배에서 나온 폐유 같은 것이라고 착각했는데 이것은 무늬오징어가 뿜어낸 먹물이었다. 뒤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연달아 히트를 했는지 무늬오징어가 수면에 떠서 먹물을 쏘아댄 것이다.
배 앞쪽은 입질이 없었다. 에깅 마니아인 한국조구경영자협회 김선관 회장은 "에깅을 하다가 먹물이 퍼지거나 걸었던 한 마리를 놓치면 입질이 뚝 끊긴다"며 안타까워 했다. 닻줄을 조금씩 풀어주는지 배는 조금씩 조류가 흐르는 방향으로 이동을 했다. 수심이 18m라는데 조류가 세차게 흐르니 한 40m 이상 원줄을 풀어줬지만 바닥에 닿는 감은 오지 않았다.
이때 거제에서 온 분이 입질을 받았다. 낚싯대가 묵직하게 휘어져 선장이 뜰채를 대서 잡아냈는데 1㎏은 족히 돼 보이는 대물이었다. 밤이라서 그런지 유독 오징어의 눈이 커 보였다.
한 10분 후 같이 온 동료도 비슷한 크기의 무늬오징어를 걸어냈다. 기자의 낚싯대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에기 몇 그램 짜리를 씁니까? 조류가 세차니 좀 무거운 놈으로 바꿔보시죠." 거제 조사들이 조언을 해 주었다. 살펴보니 30g이었다. 50g으로 잽싸게 바꿨다. 조류를 뚫고 채비가 바닥으로 내려가더니 드디어 '드르륵' 하고 입질이 왔다. 입질이 아니라 바닥을 건 것이다. 애꿎은 채비만 날렸다.
■혹독한 수업료만 내고
폭발적인 조황은 아니었다. 자리를 옮긴 곳에서 한두 마리가 나오면 그걸로 끝이었다. 선장은 한 20분 정도 상황을 보다가 바로 부저를 울렸다. "옮깁니다." 국도의 서쪽으로 배는 어둠을 가르며 나아갔다.
멸치떼가 배의 서치라이트에 놀라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뭔가 포식자에 쫓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삼치나 부시리 같다고 주변 사람들이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