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컬처로드 연다] 2부 역사와 함께하는 길 (1) 부산 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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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부터 조선 후기 흔적까지… 부산이 새롭게 보인다

동래읍성 북문 성벽. 동래구 명륜동, 복천동 일대에 걸쳐 있는 동래읍성은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에도 경주 왕릉에 버금가는 무덤이 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이어 "정말 있나요, 그게 어디 있죠?"라는 질문이 곧장 돌아온다. 연제구 연산자이 아파트 뒤쪽 배산 끝자락에 있는 연산동 고분군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수영구 쪽으로는 배산성지, 동래고읍성, 수영좌수영 성지가 인접해 있다. 동래 쪽으로는 동래패총, 동래읍성과 복천동 고분군이 이어지니 삼한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역사가 마치 구슬로 꿰어지듯 펼쳐져 있다.

시리즈 자문그룹은 바로 여기에 주목했다. 부산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을 이어 주는 것. 그래서 만들어진 게 소위 '부산의 뿌리길'이다. 수영구 쪽에서 출발지를 삼으면 부산도시철도 2호선 수영역(지하공간) 내 문화매개공간 쌈→수영사적공원(수영좌수영 성지)→동래고읍성지→배산성지→연산동 고분군→이섭교→동래패총→동래역(근대 건축)→동래읍성 임진왜란 전시관→동래부 동헌(동래부 독진대아문)→복천동 고분군→복천박물관→동래읍성(북문지)→동래향교→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움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길은 족히 10㎞가량 되지만, 부산의 대표 컬처로드로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하다. 하루 코스로 생각하고 걸으면 넉넉할 듯싶다.

연산동 고분군 봉분 존재 잘 몰라
일제강점기 동래역사까지 테마로
3개 구 협력 구슬 꿰듯 공간 이어 줘야
부산 미래 자산으로 키울 가치 '주목'


■부산의 역사 길 위에 '오롯이'


시리즈 자문 위원인 근대역사관 나동욱 관장은 "부산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이만한 길이 없다. 이 길이야말로 앞으로 부산이 미래 자산으로 키우고 가꾸어 나가기에 충분한 길이다"고 했다. 부산박물관 홍보식 발굴조사팀장도 "한번 걸어 보면 부산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 관장과 홍 팀장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동래고읍성과 배산성지, 연산동 고분군, 동래패총, 복천동 고분군 등 부산의 역사를 말하는 대표적 유적이자 역사 공간이 뿌리길 속에 모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삼한 시대 역사의 속살을 보여 주는 동래패총에서부터 삼한~삼국 시대 흔적을 보여 주는 복천동 고분군과 연산동 고분군, 그리고 고려 말까지 이어지는 동래고읍성지까지.

동래읍성, 동래부 동헌 등 조선 시대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뿌리길 속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동래역사(驛舍)까지 있으니, 이 길이야말로 '부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 팀장은 "여기에 또 하나 수영좌수영 성지도 있으니 그 의미를 더한다면, 뿌리길 속에 행정적·군사적 거점이 모두 들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경상도의 수군사령부였던 수영성은 1652년부터 250여 년 동안 존속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조선 시대 수영성이 있던 곳이 현재 수영사적공원인 셈이다.

뿌리길 안에는 동래고읍성도 있고, 동래읍성도 있다. 현재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동래고읍성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져 고려 말까지 읍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되고, 이후 조선 시대에는 동래구 명륜동, 복천동 일대 동래읍성이 그 역할을 했다.

동래고읍성은 토성(土城)이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부산지방병무청 건물 뒤 토성 벽과 우물터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봉분이 남아 있는 부산지역의 유일한 삼국 시대 분묘군인 연산동 고분군은 뿌리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공간이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는 기원전 3세기 이전 부산에 변진독로국, 거칠산국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연산동 고분군은 바로 이렇게 역사에 등장하는 거칠산국 등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삼국시대 이전 부산의 원류를 밝혀 주는 공간으로서 말이다.

또 하나 설명이 굳이 필요 없는 공간도 있다. 바로 복천동 고분군이다. 복천동 고분군은 한국의 역사·문화상으로 볼 때 경상도 지역의 수많은 삼한·삼국 시대 유적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중요한 고분유적이다.

이 밖에도 뿌리길 주변에는 왜구를 무찌르고 피 묻은 병장기를 씻었다는 세병교를 비롯해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 동래부 독진대아문, 독립운동가 박차정 생가, 장영실 과학동산 등 역사의 흔적들이 즐비하다.

뿌리길의 시작과 끝 지점에 있는 팔도시장과 동래시장도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지금 살아가는 서민의 체취를 느끼려면, 이곳을 방문하는 것도 한 방법일 터이다.


■3개 구 유기적 협조 우선돼야

뿌리길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 길이 관통하는 3개 구의 유기적 협조가 우선이다. 연제구청 관계자는 "관련 전문가들이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동래구, 수영구와 이를 놓고 얘기한 적은 없다. 하지만 필요성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걸 부산의 뿌리길로 관광상품화 하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뿌리길의 양 끝에 있는 문화매개공간 쌈이나 스페이스 움과 같은 문화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곳에 길을 안내하는 팸플릿을 배치한다든지, 해설사를 안내해 주는 곳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쉬고 머물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괜찮을 듯싶다.

스페이스 움 김은숙 대표는 "뿌리길 등 컬처로드를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는 문화 안내소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이라 말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탐방로를 알려 주는 정보 제공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수영사적공원에서 동래고읍성 가는 길 중간에 벽면이나 길바닥 등을 활용해 갈 곳에 대한 예비적 정보를 주는 방식이다. 이는 대구 근대역사거리에서 하고 있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연산동 고분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문가뿐만 아니라 관련 기관이나 시민단체와 공유할 것을 권하고 있다. 고분군의 존재를 더 적극적으로 시민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역사교육, 문화, 축제 등과 연결 짓는 다양한 작업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자문 위원들은 교육청과 연계해 이 길을 학생들을 위한 역사 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문했다.

연제구는 연산동 고분군을 국가 사적지 지정을 목표로 올 연말께 부산시에 국가 문화재(사적) 지정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게 이루어지면 내년 2월쯤 시에서 문화재청에 국가 사적지 지정을 요청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근 배산성지를 묶어 국가 사적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홍보식 팀장은 "연산동 고분군이 배산정지와 연계돼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면 더할 수 없이 좋지만, 현재 이곳엔 사유지가 너무 많아 일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산동 고분군을 국가 사적지로 만드는 것은 이제 연제구청만의 목표가 아니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공동기획 부산일보사·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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