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유 어때요] 도서관 아닌 이웃집…"똑똑! 책 빌리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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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돔 부산사람도서관'이 지난달 21일 마련한 '만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사람도서관제공

한 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경제.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제활동, 더 나아가 경쟁이 아닌 상호협력, 공동체 정신의 회복 등 대안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공유경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공유'가 거창한 경제이론이나 경제용어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민의 소소한 일상에 접목함으로써 공유 가치를 실천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똑똑!' 노크만으로도 이웃이 되는 '똑똑도서관'(www.knocklibrary.org)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김승수(40·대학강사·주민자치위원) 관장이 지난 22일 부산진여성인력개발센터 초청으로 부산을 찾아 '여성, 지역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다' 특강을 했다.

네트워크로 이뤄진 파주 '똑똑도서관'
뜻 함께한 이웃끼리 서로의 집 개방
책·음반·DVD 공유, 요리 등 재능나눔도
서울·대전 등 확대, 전국 24곳 운영 중

22일 부산을 찾은 김승수 '똑똑도서관' 관장. 강원태 기자 wkang@
■똑똑! 책 빌리러 왔습니다!

똑똑… 누구세요? 네… 책 빌리러 왔어요. 아, 어서 오세요.

도서관은 있는데 별도의 건물은 없는, 똑똑도서관. 도서관의 신개념을 보여 준 똑똑도서관은 뜻을 함께한 이웃끼리 서로의 집을 개방해 도서관으로 이용하는가 하면, 책과 아울러 주민 간 재능도 나누고 문화도 향유하면서 이웃 간 소통과 교류의 공간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김 관장은 어떻게 해서 똑똑도서관을 만들게 된 것일까?

이는 30대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맡은 김 관장의 독특한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 관장은 지난 2010년 36세의 나이로 1천507세대가 사는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 당선된다.

■30대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회장 당선 직후 그의 행보는 남달랐다. 가장 먼저 입주자대표회의를 입주민들이 집에서 TV로 시청할 수 있도록 생중계했고, 아파트 홈페이지를 리뉴얼해 판공비 일부로 주민 참여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또 아파트 운영 중 발생하는 '잡수입'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하는 '주민 콘퍼런스'도 열었다. 사람들이 모일 때면 '먹는 곳에서 인심 난다'고 먹을거리도 늘 풍족하게 준비했다. '분리수거장' 설치 같은 주민 제안사항이 실현될 땐, 제안자를 초청한 조촐한 테이프 개막식을 열거나 준공된 시설에 제안자 이름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2년 임기의 회장직을 연임하지도 않았다. 그의 퇴임식을 겸한 '전 우주의 음악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파트 아줌마들이 주축이 돼 진행됐고, 회장직 사임 후에도 그는 자기 집에서 주민들과 함께 두 번째 '오픈 콘퍼런스'를 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도서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물리적 공간은 우리가 사는 집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들이 유지관리나 활용도 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한 점에 주목하면서 건물은 없지만 네트워크로 이뤄진 도서관을 시작한 겁니다."

김 관장에 따르면 똑똑도서관은 각자가 공유할 수 있는 책 목록을 홈페이지나 밴드,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면 사서가 되는 것으로 출발한다. 대출 시간은 그 집의 사서가 정한다. 그리고 해당 시간에 책을 빌리러 그 집에 가서 '똑똑!' 두드리면 된다. 신뢰관계가 어느 정도 확보된 사람이 오기 때문에 "어서 오세요~ 커피 한잔하고 가~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고 그렇게 주민을 알아 가게 된다는 거다.

김 관장은 똑똑도서관의 콘텐츠를 도서에만 국한시키지 않았고, 음반·DVD와 같은 콘텐츠 공유는 물론, 리본공예 냅킨아트 요리교실 등 주민들끼리 재능을 서로 나누는 '동네 학습프로그램'으로 확대했다. 한 일본인 아줌마는 '원어민 일본어 회화'까지 열었다. 이렇게 해서 똑똑도서관은 책만 빌리는 곳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풍부해지는 곳으로 변신했다. 

찻집 '대유정'에서 열린 마술 이야기. 연제구청 제공
부산불교신도회관의 두피 관리 강좌. 연제구청 제공
연미초등학교의 천연비누 만들기. 연제구청 제공


■지역네트워크-나도 관장이다

파주에서 시작된 똑똑도서관은 현재 서울, 대전, 원주 등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 24개로 늘어났으며, 올 12월께는 '전국 관장회의'도 열고 동네마다 다른 버전을 모아서 책도 펴낼 계획이다.

이날 김 관장은 강조했다. 실천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고. 시민운동 역시 '합시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리고 "여러분은 '누구나'가 될 겁니까, '아무나'가 될 겁니까? 안전한 마을만 해도, CCTV만 많이 달 게 아니라 아이들 얼굴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산에서도 누군가가 이런 도서관을 만들겠지요!"라는 그의 말이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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