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요산문학상] 수상자 '투명인간' 성석제 소설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야말로 사람의 시선을 붙드는 장치"
소설가 성석제를 부산에서 만났다. 장편소설 '투명인간'으로 제31회 요산문학상을 수상한 그가 지난 13일 인터뷰 차 부산일보사를 찾았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 다니고 서울에 사는 그는 "부산과의 인연이요? 수도 없이 왔죠. 처가가 부산이고 대학 때 친한 선배들도 부산 출신이 많고, 친한 부산 작가로는…" 하며 한바탕 쏟아낸다. 요산문학상 수상으로 그는 부산과 좋은 인연을 하나 더 맺었다.
성석제 소설을 한두 줄로 요약하긴 어렵다. 시로 먼저 등단하고 1995년 소설 등단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내면서 주목받은 후 스무 권가량 책을 내면서 탄탄한 입지를 쌓은 소설가로,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건달 춤꾼 바보 등 별스러운 인물의 이야기에 재미나 풍자를 얹어 내 어느새 독자들을 숨겨진 진실에 다가서도록 만든다.
詩로 등단한 '탁월한 이야기꾼'
별스러운 인물에 풍자 얹어 내
현대사 재조명 작품으로 수상
전작들보다 무거운 분위기
처가 등 부산과 많은 인연
이번 수상으로 인연 더 보태
-요산과 인연이 있다면?
"요산을 직접 뵙진 못했습니다. 어릴 때 작품을 읽었는데 잘 이해는 못 했어요. 머리가 굵어야 세상의 디테일을 알고 섬세한 감성도 느낄 수 있는데 이야기만 따라간 기억이 납니다. 굽히지 않고 꼿꼿했던 부산 문학의 큰 나무, 문학의 스승 중 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게 없는 소설가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바둑 고수이고 족보 같은 것도 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럴 수야 없죠. 오히려 잘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리지 않고 새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역사소설 쓸 때 족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조선 시대 가치관이나 혼맥 등을 체화했어야 했습니다. 작심하고 파고들어 죽으라고 외웠죠. 지금은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누구와 몇 촌쯤 되는구나, 집안에 언제 무슨 사건이 있었다 말할 정도는 됐죠.
-'투명인간'처럼 최근 현대사를 다시 생각하는 소설들이 많습니다.
"'투명인간'은 서대문의 한 창작촌에서 썼어요. 늘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어요. 어떤 참혹한 사건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랄까. 과거에 누가 참수를 당하면 몇 년 후에나 들었지만 지금은 리얼 타임으로 듣습니다. 끔찍하고 이상한 일들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무감각해지고 어떤 악도 용납될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주는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원자탄이 아니라 정보통신이나 문명이 우리를 자멸시킬 수 있겠다 싶어요. 그걸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가 우리가 인간이었고, 인간으로 살았던 때를 되돌아보는 거죠. 소설들이 현재를 가까운 과거, 그러니까 10~20년 전으로 , 또 10~20년 후로 약간씩 관점을 바꾸고 변용하면서 생겨나는 긴장이나 느낌을 계속 던지는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니까요."
-'투명인간'의 주인공 '김만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소설 인물들은 남들보다 튀는 인간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이 지금은 너무 많아요. '다즉일(多卽一)', 즉 '일' 대 '다'의 대립구도로 보면, '일'도 쓸 것 없고 '다'에 대해 쓰면 지리멸렬합니다. 강자들이 많을 땐 그들을 좇으면 뭐가 나올 줄 알았죠. 지금은 약한 '일'들만 남았어요. 이걸 소설이나 작가가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옳다고 믿는 사람은 있어야죠. '일'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과 어울려 이야기할 때 하나의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작은 변화가 올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잘 어울려 살면 좋겠어요. 노력 없이 방관하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태들, 세월호 사건 같은 일들은 너무 기가 막히죠."
-'투명인간'에는 화자가 수십 명입니다. 문학 수업에서 듣지 못한 서사 방식인데?
"일종의 다큐멘터리식 구성이라 보면 됩니다. 카메라 옮겨 가며 이 사람 이야기하게 하고, 다음으로 건너뛰는 거죠. 문학적 통사가 지닌 한계를 넘을 수 있었죠. 현대사를 다 욱여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의미나 연결 고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취사선택했어요. 어떤 화자는 추상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른 화자는 이상한 말들을 쓸 수 있는 거죠. 이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팩트는 아니에요. 여러 사람의 관점으로 재구성된 것이 이 소설입니다. 연극적이라고 할까요."
-해학과 풍자가, 선생님 소설들의 특징으로 통합니다. 하지만 '투명인간'은 상대적으로 무거워 보입니다.
"해학이나 풍자는 쉽게 날아갑니다. 금방 휘발되는 거죠. 사람들 시선을 오래 붙들고 머물게 할 수 있는 장치는 이야기이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자꾸 생각하게 되는 거죠. 높은 산에 오래 묵은 채 쌓인 눈처럼 말이죠."
-소설이 잘 써지는 때는 언제인가요?
"별명이 성데렐라예요. 밤 12시만 되면 술 마시다가도 집에 가거든요. 글은 오후에 씁니다. 운 좋기로는 오전이 좋아요. 잘 써지거든요. 최근 1년 반쯤은 국내외 여기저기 다니면서 쓰는데 요즘은 카페를 주로 이용합니다."
-역사소설을 많이 썼습니다.
"현대소설 쓰다가 쉬고 싶을 때 역사소설을 씁니다. 역사 속 사실은 딱딱한 것 같은데 사실 상당히 부드러워요. 실록이냐 승정원 기록이냐에 따라 한 사람을 두고 다양한 시선들이 있어요. 시간 날 때 역사를 뒤져 봅니다. 악인전 같은 역사소설도 쓰고 싶어요. 이완용이나 천추의 간신이 된 남곤 같은 인물들의 계보를 엮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역사가나 후손으로부터 원망은 듣겠지만요."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