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사이버 검열과 국민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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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사회부장

2014년 10월. 온 산하가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좋은 계절에 전국이 때아닌 '사이버 검열'로 논란 속에 빠졌다. 오랜 경제난 타개를 위해 모든 국민의 힘을 모아도 갈 길이 바쁘기만 한 '대한민국호'가 '사이버 망명' 소동으로 난리다.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한 달 전인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발언한 게 단초가 됐다. 불과 이틀 뒤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를 엄단하겠다며 메신저 등에 대한 상시 감독에 나서면서 문제를 키웠다. '국민 메신저'로 등장한 카카오톡(카톡)과 네이버 밴드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등 검·경의 사이버 검열은 국감장에서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핫이슈가 됐다.일반인들의 사이버 망명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카톡을 접고 텔레그램으로 망명합니다." 요즘 지인들에게서 자주 받거나, SNS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메시지다. 사이버 망명은 정치적 사유 등으로 자국 서버에서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에 제한 받는 이용자가 이메일, 블로그 등 디지털서비스의 주 사용무대를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해외 서버로 옮기는 행위를 뜻한다. 텔레그램은 검열의 안전지대로 꼽히는 독일에 서버를 둔 무료 메신저로, 대화내용을 암호화해 보안성이 강하고 개인정보 보호가 우선이어서 인기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랭키닷컴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이후 카톡 이용자 수는 매주 5만~6만여 명씩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5~11일 일주일간 카톡 이용자는 전주보다 5만 6천여 명 줄어든 2천917만 9천여 명으로 나타났다. 반면 최근 텔레그램으로 옮겨간 한국인은 150만여 명으로 추산돼 검열을 질타하는 야당에 힘을 실어 주고 있으나 국내 정보통신산업엔 악재가 되고 있다.

사이버 검열에 대한 반발과 망명의 본질은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공포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학적 통찰과 풍자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년'에서 얘기한 '빅 브러더(Big Brother)'의 출현이 염려되는 것이다. 빅 브러더는 정보 독점과 감시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이나 사회체계를 일컫는다. 박근혜정부가 그동안 소통보다는 불통과 일방성이 강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어 소설 속에서 화장실 CCTV 설치 등 실로 가공할 만한 사생활 침해까지 일삼는 빅 브러더의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무려 294명이 숨지고 10명이 아직도 실종 상태인 세월호 침몰 참사가 16일로 만 6개월째를 맞는 과정 등에서 정부가 보여 준 무능과 거짓말에 대한 국민적인 불신도 이번 사이버 사태를 낳은 큰 이유다. 더욱이 국민들은 검·경을 믿지 않는다. 검·경은 숱한 실수와 비리, 인권 침해를 저지르며 신뢰를 잃었다. 검·경이 국민의 안전과 정의를 수호한다는 말을 신뢰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15일 대검찰청이 사이버 검열 논란의 확산을 막기 위해 "수사를 위한 메신저 압수수색 시 '필요 최소한도' 범위 내에서만 자료를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국민의 불안감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헌법 제17조에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의 개인정보와 인권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기관이 개인정보 보호를 외면하고 합법적 테두리를 지키지 않은 채 개인정보에 접근한다면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수사당국의 사이버 사찰로 국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어 감시와 여론통제 수단으로 사이버 검열이 이뤄져선 결코 안 된다. 정부는 IT강국답게 기술발달 수준에 맞춰 수사기관의 사생활 침해와 공권력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에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사생활 보호와 사회 안전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면, 거기에 필요한 제도에 대해 국민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동의를 구하길 바란다.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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