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 콤플렉스, 2년 9개월 만에 축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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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를 시작한 지 불과 2년 9개월 만에 프로 1라운드 지명을 받은 부산 남성여고 문명화가 자신의 운명을 뒤바꾼 배구공을 손에 들고 활짝 웃었다. 사진=김경현 기자 view@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던 큰 키가 '축복'으로 바뀌는데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14-2015시즌 여자 프로배구의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산 소녀가 있다. 부산 중구 대청동 남성여고 배구부의 문명화(20)다.

고교 최장신 남성여고 문명화
"18일 프로배구 개막만 기다려"


올 시즌 신인 드래프트가 있던 지난달 11일. 단상에서 명화의 이름이 4번째로 호명됐다. 운동선수의 길을 택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꾼다는 1라운드 지명이다.

"아직도 제대로 실감이 안 나요. 덜컥 1라운드에서 제 이름이 불렸으니까. 단상에 서긴 했는데 어찌나 덜덜 떨리던지…."

명화는 흔히 말하는 '구력'이 일천하다. 운동이라곤 담을 쌓고 살던 여고생이 배구공을 잡은 건 1학년이 한참 지나서였다. "배구부 윤정혜 감독님이 한 달 넘게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며 '같이 배구를 하자'고 권하셨어요. 야간 자율학습 마치고 귀가하면 집 근처에서 기다리는 감독님이 무서워 울기도 했거든요."

신인 드래프트에 덤벼든 경쟁자 모두 늦어도 중학교 저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한 이들이다. 명화가 내세울 건 중학교 3학년 무렵 벌써 180㎝를 넘길 정도로 눈에 확 들어오는 큰 키와 덩치뿐. 윤 감독도 학교 측에 신입부원이라며 명화의 사진을 보여주자 '이렇게 뚱뚱한 애를 어떻게 운동선수로 만든다고 그러느냐'는 핀잔을 들었을 정도였다.

"여자니까 철들고 나서는 키가 크는 게 전혀 달갑지 않았어요. 사실 운동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엄청 콤플렉스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선수 생활을 시작하니까 이게 이만저만 축복이 아니더라고요." 명화의 키는 올 시즌 드래프트에 나선 신인 가운데 최장신인 190㎝다. 장신 센터가 절실한 팀이라면 어디든 탐을 낼만한 재목이다.

명화의 키는 실업배구 시절 선경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어머니 김영희 씨에게 물려받았다. 늦게 들어선 배구의 길에 어머니가 물려준 큰 키와 배구 DNA는 든든한 길잡이가 됐다. 지난달 KGC 인삼공사에 합류한 명화는 팀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 "고향에 배구팀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은 프로에 지명 받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죠. 팀 분위기도 좋고요. 룸메이트는 같은 센터 장영은 언니랍니다. 언니들 다들 자상하게 대해주세요." 다행히 인삼공사는 장신의 센터가 절실해 명화도 곧 제 몫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고교 최장신의 이점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최적의 팀인 셈이다.

명화를 키워낸 윤 감독은 "명화가 프로에 지명되기까지 정확히 2년 9개월 하고도 15일이 걸렸다"며 "늘 두꺼운 옷으로 몸을 싸매고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몸이 탄탄해지니 당장 짧은 반바지부터 사 입는 걸 보고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구나'하는 자부심이 느껴지더라"며 웃었다.

프로의 문을 두드린 명화가 동경하는 롤모델은 V리그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센터 양효진(25)이다. 윤 감독의 조련을 받은 남성여고 출신의 동문 선배이기도 하다.

"솔직히 프로 지명을 받고 난 뒤에도 같이 훈련한 친구들에게 미안해 제대로 웃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원하던 프로에 왔으니 효진 언니처럼 멋진 선수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오는 18일 KOVO 컵 여자 프로배구가 새 시즌의 막을 올린다. 명화의 발걸음은 벌써부터 개막전 코트 위를 달리고 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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