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폐공간 예술 심으니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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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객터미널의 폐쇄된 무빙워크에 '가방'을 주제로 펼쳐 놓은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폐공간이 예술로 생기를 되찾았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의 문턱도 문화와 예술이 낮췄다. 이게 문화의 힘이라는 걸 여실히 증명하는 축제가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바로 복합문화예술축제인 '무빙트리엔날레 메이드인부산'(이하 '무빙트리엔날레'). 부산자연예술인협회, 오픈스페이스 배, 안녕광안리, 대안문화행동 재미난복수, 생활기획공간 통 등 5개 문화예술단체가 중심이 돼 오는 26일까지 부산여객터미널, 또따또가갤러리, 부산지방기상청, 구 중구노인복지회관, 하동집돼지국밥 등 중구 원도심에서 전시와 공연, 학술, 네트워크 등의 프로그램을 펼친다.

26일까지 '무빙트리엔날레 부산'
연안여객터미널 '가방 프로젝트' 눈길
기상청·국밥집 등 원도심 곳곳서 열려

이번 무빙트리엔날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부산여객터미널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출구' 전. 특히 작가들의 삶과 생각을 드러내는 표현 장치로 가방을 활용하는 '가방 프로젝트'는 터미널 내 폐쇄된 250m 무빙워크에서 펼쳐져 아주 인상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불확실하고 모순적이며 혼돈의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의 삶에서 제기되는 문제들과 정신을 '가방'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담아내고 있다. 요컨대, 작가 김정주는 약통이 가득한 여행용 가방을 전시했다. 외국 출장을 가는 남편에게 부인이 묻는다. "여보 가방 다 챙겼어?" 그러자 남편이 대답한다. "음~, 약은 다 챙긴 것 같은데…."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여행 때마다 약을 챙겨야 하는 중년 남성의 씁쓸한 일면이다.

무빙트리엔날레 김성연 전시감독은 "이 가방들은 부산 전시 이후 타 도시를 거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 지역의 문제와 생각들을 더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 전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여행지에서 채집한 기내 방송, 역무원 소리, 아이들 목소리, 여행에 지친 사람의 코 고는 소리를 채집해 들려주는 최보희·한지원 작가의 공동작품도 눈길을 끈다. 열 지어 있는 수십 개의 전시 가방에서 이런 소리를 듣게 된다면, 누구라도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축제가 펼쳐지는 또 다른 장소는 부산지방기상청(대청동 기상관측소).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다. 근대 건축물(부산시 기념물 제51호)로도 의미 있는 공간이며 용두산과 부산항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이 건물 마당의 잔디밭에는 폐목선과 자개를 결합해 만든 배가 보인다.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만났던 조형섭 작가의 '산으로 간 배' 작품이다. 건물 3층으로 올라가자 입구 복도에서 김대홍의 꾸물거리는 로봇이 반긴다. 방 내부에는 조형섭의 망원경이 관람객을 지켜본다. 다른 방에는 조종성의 도시작업이 펼쳐져 있다. 투명한 포장 용기가 던지는 도시 건축의 이미지는 허상으로 가득 찬 오늘의 도시를 말하는 것 같다. 공공기관의 문턱이 낮아지자 예술이 꽃을 피웠다.

한동안 비어 있었던 구 중구노인복지회관에서는 '이미 거주하는'이라는 주제의 다양한 미디어 영상물을, 또따또가갤러리에서는 축제에 참여한 단체의 자료와 정보를 공유하는 아카이브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만 있는 게 아니다. '무빙스테이지-여러 가지 공작소'라는 프로그램으로 원도심에서는 주말마다 다양한 공연도 펼쳐진다. 오는 18일 오후에는 구 중구노인복지회관 앞에서 '김프로&돌이'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포럼 형식(무빙라운드)의 학술 프로그램이나 대담(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평일 점심때나 주말엔 하동집돼지국밥에 들러 예술가, 기획자 등과 소통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터이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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