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영화] 후쿠시마에서 부르는 자장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핵재앙 속 '새 생명' 지키려는 몸부림

후쿠시마에서 부르는 자장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어두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영영 밝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생명의 가치 또한 알 길이 없는 것이며, 어제의 슬픔이 있었기에 내일의 기쁨을 기다리며 오늘 이토록 숨죽인다. 서로 잇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도저한 극(極)함들은 일상이라는 척추를 공유하며 샴쌍둥이처럼 한 몸을 이룬 채 꼭 붙어 있다.

2011년 3월 11일. 벚꽃으로 눈부시던 일본 후쿠시마를 덮친 쓰나미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원자력발전소(원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후쿠시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어이 살피고자 했던 이 다큐영화의 감독 부부는 일부러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 접근 금지라인이 그어진 원전 반경 20km 이내 지역까지를 뚫고 들어갔다. 촬영 중인 카메라 앞에서 다시금 흔들리는 땅을 느끼며 그들은 죽음을 느꼈다.

목숨을 걸고 원전으로 향했던 이들은 이 부부만이 아니었다. 남편과 동행했던 아내의 몸에 4주 차의 생명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부부가 뒤늦게 알게 된 순간, 불행은 다른 궤도를 향해 뻗어 가고 있었다. 배 속의 아이가 사람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나가고 있었듯 말이다. 방사능에 의한 DNA 손상은 태아>신생아>어린이>청장년>노인의 강도로 일어나는 법.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상황인 노심용융으로 인한 폭발 현장에서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카메라를 들었던 어미는 배 속의 생명에게 그제야 사죄하며 반드시 아이를 지켜 내기로 결심한다.

이리하여, 영화의 전반부는 후쿠시마 원전 관련 재난다큐의 모습을, 그 후반부는 출산·양육다큐의 꼴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기이한 구성이야말로 위험사회 특유의 양면성을 정확히 드러낸다. 핵이라는 죽음과, 아이라는 생명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 이 영화의 여성감독은 핵 시대(nuclear era)에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성찰하며, 자신의 아이를 위해,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방사능 없는 세계를 단호하게 희망한다.

한국 정부는 현재 23개인 원전을 2024년까지 총 42개로 확대하여 세계 3위의 원자력대국이 되겠노라 하였다. '한국 탈핵'의 저자 김익중의 일갈처럼, "세계 3위의 원전대국은 다음 핵사고 확률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좁은 땅 위에 악명 높은 인구밀도만큼 촘촘히 들어선 원전들과 더불어 자라 가게 될 아이들은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영화는, 엄마는, 묻는다. 부디 답해 주시라, 핵 시대에 아이들이 된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어른들이여, 이제는 부디 답해 주시라. 


정일신 모퉁이극장 편집위원

곱고 여린 이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장소를 희망하며 2011년부터 생활인문공동체 '친정'을 꾸려오고 있으며, 관객이라는 아마추어리즘의 건강한 제 목소리를 응원하는 모퉁이극장의 골수팬이자 게으른 편집위원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