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행복, 사회적 경제] ② 영국의 사회적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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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 요리사 변신, 자활 터전 레스토랑은 손님들로 북적

영국 런던의 '브리게이드' 레스토랑 내부.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깰 만큼 요리 수준이 높아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영국 런던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기업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사람을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경제인 '사회적 경제' 실현을 위해 사회적 취약계층을 교육하고 채용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주는 길을 적극 터주기도 한다.

최근 런던에서 노숙자와 범죄자 등 사회 최약자층을 요리사로 길러내는 '브리게이드(Brigade)' 레스토랑이 더불어 함께 일하는 사회적기업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6년 첫 발 내딛어

런던의 관광명소인 런던브리지 인근의 오래된 소방서 건물. 가까이 다가가 보니 브리게이드 레스토랑이었다. 65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널찍한 레스토랑은 점심시간이 되자 말쑥하게 차려입은 정장 차림의 남녀들로 순식간에 가득 메워졌다.

요리사가 만든 '노숙자 요리학교'
사회단체·정부 지원 이끌어내며
빈 소방서 건물에 레스토랑 오픈
취약계층 교육,일자리까지 제공


이 레스토랑은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깬 것이 전부가 아니다.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노숙자 등 사회 취약계층을 적극 교육하고 일자리까지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었다.

비어 있던 소방서 건물을 활용해 영업 중인 브리게이드 레스토랑.
브리게이드는 1861년 런던 툴리에서 발생한 대화재를 추모해 건립된 소방서 자리에 세워졌다. 건물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fire station'이라는 글씨를 지우지 않은 것은 브리게이드 역시 소방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방서 정신을 이어나가는 레스토랑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란다.

브리게이드의 첫 구상은 8년 전 탄생했다. 설립자이자 요리사인 사이먼 보일은 2006년 동남아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쓰나미 현장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다가 집을 잃고 헤매는 노숙자들을 돕게 되면서 이들을 위한 자립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영국으로 귀국한 보일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런던에 노숙자를 위한 요리학교를 열었다. 자그마한 주방을 임대해 노숙자 3~4명을 대상으로 요리에서부터 손님맞이 방법 등 다양한 기술을 가르친 게 브리게이드의 전신이다.

보일은 5년간 런던을 중심으로 16세부터 6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 노숙자들을 위한 이벤트 활동을 벌이면서 요리학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모아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비욘드 푸드 파운데이션(Beyond Food Foundation·BFF)'을 설립, 글로벌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Pricewaterhouse Coopers)'와 정부 등의 지원도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3년 전 당시 비어 있던 현재의 소방서 건물을 인수하면서 브리게이드 레스토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도전하는 노숙자 늘어 뿌듯

브리게이드 레스토랑의 요리 프로그램은 6주에 걸쳐 기본 및 심화교육을 거친 뒤 6개월 동안 레스토랑 주방에서 직접 요리에 참여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수강자가 모든 과정을 끝내면 공식 요리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자격증을 획득한 이후에는 브리게이드에 남거나 다른 레스토랑이나 케이터링 업체 등에서 6개월간 일할 수 있다. 다른 업체로 옮기면 새로운 업체에 조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상담 등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한다. 훈련에 그치지 않고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셈이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교통비를 제외하면 교육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레스토랑이 부담하는 것이 눈길을 끈다.

교육에 참여할 노숙자 모집은 BFF가 나선다. BFF는 자활 관련 민간단체 8곳과 연계해 노숙자와 범죄자 등 훈련생을 모집한다. 1년에 2차례에 걸쳐 훈련생 16명을 가르친다. 이렇게 배출된 인원은 현재 60명 정도다.

모든 노숙자들이 훌륭하게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절반 이상은 중도에 포기하고 길거리로 돌아간단다.

노숙자들이 거주하는 임시합숙소 등을 돌아다니면서 요리학교를 소개하고 노숙자들에게 요리기술을 배우도록 설득하는 작업은 녹록지 않다. BFF 소속 젠 세이모어 매니저는 "취약계층 120~140명을 만나도 이들 중 요리를 배우려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되며, 훈련생 가운데 중도탈락자들 역시 속출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최근 들어 노숙자와 범죄자들 사이에서 자활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하루에 4~6명씩 문의가 들어와 보람이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브리게이드 레스토랑의 향후 목표는 좀 더 많은 노숙자와 범죄자 등 취약계층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세이모어 매니저는 "레스토랑 수익금의 절반 이상은 취약계층 교육에 재투자되면서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며 "재단 등을 중심으로 보다 많은 재원을 모으고 레스토랑이 잘 되도록 돕는다면 언젠가는 제2의 브리게이드도 탄생하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런던/글·사진=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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