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헝가리 벨라 타르 감독 마스터 클래스 "영화를 만드는 건 세상에 대한 반응…예술의 힘은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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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거장 벨라 타르 감독이 6일 월석아트홀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자신의 영화 세계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동해 인턴기자

"'나는 세상의 빛을 잃었다. 그래서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이 유효한가?"

행사를 진행한 영화평론가 허문영이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예스!"

이제는 메가폰을 놓은 헝가리의 거장 벨라 타르(59)가 올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지난 2012년 BIFF 뉴커런츠 심사위원장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부산 나들이. 6일 오후 해운대 월석아트홀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한 그는 약 1시간 30분 동안 질곡 같았던 34년 영화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2세에 첫 장편 '패밀리 네스트'를 발표한 그는 9편의 장편을 빚어내 '다작' 감독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영화 '토리노의 말'(2012)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고 영국의 영화잡지 Sight & Sound가 톱10으로 선정,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진정한 영화는 촬영서 비롯
시나리오는 절대 쓰지 않아
젊은 후배들, 세계 흔들라


이날 행사에 앞서 그는 지난 2004년 유럽의 저명한 감독 25명이 옴니버스로 만든 '비전스 오브 유럽'에서 자신이 연출한 '프롤로그'를 먼저 보여 줬다. 약 5분짜리 흑백필름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단 한 개의 쇼트로 빚어졌으며 빵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담았다. 대사는 전혀 없고 사람들의 얼굴과 무표정, 그리고 웅장하면서도 엄숙한 음악을 깔았다. 유별나고 고집스러운 그의 영화문법이 무엇인지를 암시해 줬다.

주로 사실주의적 구성에 흑백을 고집한 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세상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와 불의에 대한 증오를 갖고 처음 영화를 만들었다"며 "그 이유는 당시 스크린에서 나온 것은 가짜 이야기였고 판타지였다. 배우의 연기는 형편없었고 거짓 대사를 읽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고 나는 현실세계의 단순하고 잔인하고 순수한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는 쇼비즈니스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덧붙였다.

흑백영상과 함께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롱테이크(길게 찍기)다. 한 컷이 5분, 7분이 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롱테이크를 즐겨 쓰는 이유를 묻자 그는 "난 시나리오를 절대 안 쓴다. 진정한 영화는 로케이션(촬영)에서 나온다. 그래서 누구를 시키지 않고 내가 직접 촬영 현장을 찾고, 이후 좋은 배우와 상황으로 영화를 찍는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뒤 롱테이크를 통해 상황의 정수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영화적 영감을 세상에서 찾는다는 그는 배우를 뽑는 것도 색달랐다. 타르 감독은 "영화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찾아내 개성이나 성격이 맞으면 굳이 연기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찾은 배우가 평소대로 하면 그게 가장 좋은 연기"라고 말했다. 음악 역시 기존 감독과 생각이 달랐다. 그는 "음악은 영화의 한 주인공이다. 그래서 난 작곡가에게 음악을 먼저 주문한다. 촬영 현장에선 그 음악을 틀어 놓기도 했다"고 자신만의 영화철학을 소개했다.

영화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나는 영화가 힘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예컨대 음악을 듣고 감동을 느끼면 된다. 그게 예술의 힘이다. 영화를 통해 그 이상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감독 은퇴'를 재확인해 준 그는 마지막으로 "새로운 언어, 신선한 사람, 용감한 사람들이 보고 싶다"며 "젊은 후배들이 나서 세계를 흔들어 놓으라"고 당부했다.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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