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원묘원 비석에 웬 '노란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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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울산시 남구 문수로 울산공원묘원 내 관리비가 장기 연체된 봉분에 노르스름한 딱지가 1년 가까이 붙어있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권승혁 기자

"돌아가신 할아버지 면전(비석)에 감히 '노란딱지'라니요. 울산공원묘원이 행정기관도 아니면서 '행정처분하겠다'는 건 고객에 대한 겁박 아닙니까?"

쾌청한 날씨를 보인 14일 오후. 울산시 남구 문수로를 지나 정토사를 거쳐 울산공원묘원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목 곳곳에 '관리비 장기 미납 분묘에 계약파기 행정처분'이란 내용의 노란 현수막이 나부꼈다.

추석 명절에 미처 산소를 찾지 못한 성묘객들이 '관리비 장기연체 분묘 법률조치 2차 고시기간'이라고 적힌 붉은 현수막 앞에 간간이 차를 세워놓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4천여 기에 관리비 독촉장
미납 연체료 수십억 원

묘원 "체납으로 황폐화 우려"
후손 "영구관리비 납부" 반발


묘원에 들어서자 더욱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묘지 비석 윗부분에 '주차 딱지' 크기만한 고지문이 덕지덕지 붙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리비 장기연체 분묘로 분류돼 관리비를 납부하라는 독촉장이었다. 올해 초부터 독촉장이 붙은 탓에 노르스름해진 종이는 닳고 글귀조차 절반 이상 지워진 상태였다.

울산묘원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노란딱지가 붙은 분묘는 대부분 관리비 납부 문제로 후손과 울산묘원 사이에 분쟁을 겪고 있는 산소들이다.

묘를 쓴 지 30년이 넘어 후손과 연락이 닿지 않는 묘지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공원 전체 1만 3천여 기 가운데 4천~5천여 기가 이같은 체납 분묘로 분류돼 체납비만 수십억 원에 달한다.

독촉장이 붙은 묘지의 일부 후손은 "영구관리비를 냈다"며 반발하는 반면, 울산묘원 측은 "법 개정으로 관리비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1977년 개원한 울산묘원은 애초 분묘 1기당 30만~50만 원에 10년 동안 관리해주는 조건으로 묘지 이용료를 받아왔다. 묘지 규모에 따라 100만 원부터 수백만 원씩 영구관리비를 내고 묘지를 쓴 고객도 많았다.

그러다 1991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15년 간 관리비를 선납받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울산묘원 측은 이에 법 개정 이전에 쓴 묘지에 대해서는 1회분(1991~2005년) 관리비를 유예해 준 뒤 2006년부터 관리비를 일괄 징수했다.

현재 관리비는 3.3㎡(1평) 당 1만 5천 원. 9.9㎡(3평)의 경우 1년에 4만 5천 원씩 15년이면 67만 5천 원의 관리비를 내야 한다.

이날 산소를 찾은 한 후손은 "수십 년 전에 수백만 원의 영구관리비를 냈는데 법이 바뀌었다고 돈을 더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봉분을 밟는 것도 죄스런 행동인데 이렇게 조상 얼굴이나 다름없는 비석에다 협박장같은 노란딱지를 붙여놔 매우 불쾌하다"고 화를 냈다.

울산묘원관리사무소 측은 관리비 장기체납으로 묘원의 황폐화가 우려된다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법 개정 이후 수십 년 전 분묘의 후손들도 관리비를 추가로 내야 하는데 이를 모르는 후손이 너무 많다"며 "관리비를 안 낼 경우 무연고묘로 처리해 파묘할 수도 있지만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어서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관할 남구청은 "울산묘원 측에 추가 관리비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며 "행정처분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확인 후 철거토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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