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황충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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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려 있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은 잎사귀를 볼 수 없고 모두 졸지에 황무지로 돌변했다.' 중국 농촌을 배경으로 한 펄 벅의 소설 '대지'는 메뚜기떼의 습격 장면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의 한 마을에서 며칠 전부터 메뚜기떼 수십 억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며 곡식을 갉아먹는 등 농지 피해가 발생했다. 알고 보니 메뚜기과에 속하는 풀무치류, 이른바 황충(蝗蟲)의 습격이었다.

황충은 역사 속에서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도 황충의 폐해가 극심해 백성들이 기근으로 울부짖고 있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왕들은 이를 하늘이 내린 벌로 여겨 노심초사했다고 전해진다. 아프리카나 중동지방에 메뚜기떼가 출몰해 곡물지대를 초토화시켰다는 소식도 종종 접할 수 있다. 성경의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이집트에 메뚜기떼를 내려앉게 해 온 땅을 황폐화시킴으로써 파라오에게 경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서양에서도 메뚜기떼는 신이 내린 재앙으로 인식됐음을 알 수 있다.

따뜻한 날씨와 건조한 환경에서 부화율 증가와 곤충의 천적인 조류 감소 등 국지적인 생태계 변화로 황충떼가 일어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산업화시대 이후로는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연구팀이 개별 서식을 하는 메뚜기에 비해 공격성이 강한 군집성 메뚜기의 신경계에서 세로토닌이 3배 이상 분비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가뭄으로 먹이가 부족하거나 서식지가 좁을 때 세로토닌 분비량이 증가된다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이 메뚜기의 공격성을 자극하고 떼를 짓게 한다는 분석인데,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성싶다.

백태현 논설위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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