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불신의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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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편집국 부국장

아직도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유병언이 진짜 죽은 게 맞아?"

'과학자의 양심을 걸고' 한 말도 마음 놓고 믿기 힘든, 아니 어쩌면 믿으려 들지 않는, 정말 어지간해서는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믿기 힘든 '불신의 시대'다. 사실이어서 믿고 거짓이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믿지 않게 된, 지금 우리 사회의 집단 불신은 공동체의 존립까지도 위협하는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발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의 70% 정도가 정부 발표에 불신이 생겼으며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해 불신을 가진다고 응답했고, 정부를 믿는다는 비율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이런 불신이 쌓이게 된 데는 무엇보다 사회 지도층의 책임이 크다. 정치인과 관료, 교수, 법조인 등 말깨나 하고 힘깨나 쓴다는 집단은 모조리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언론인도 한 자리를 거들고 있다. 부정과 부패, 관피아, 전관예우, 논문 표절, 탈세 등등 지도층의 불법·탈법과 부도덕은 이미 도를 넘었다. 거기에 더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무능하기까지 한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 버렸다.

이런 불신의 시대를 살아 내려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서 바깥 세상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제 갈 길만 가는 것이 가장 속 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땅에 태어나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 회복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 이르렀다.

신뢰 회복을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그러나 실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방법은 잘못을 한 사람이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잘못을 그냥 눈감고 넘어가거나, 오히려 잘못된 방법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을 내버려 둔다면 올바른 사회에 대한 믿음은 생겨날 수 없다.

흔히 신상필벌이라 일컫는 이것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자(孫子)의 고사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오왕 합려에게 등용되기 위한 시험으로 궁녀들의 군사 훈련 지휘를 맡은 손자가 왕이 총애하는 후궁을 두 편으로 나뉜 궁녀들의 대장으로 삼아 훈련을 실시하다 그의 명령을 장난으로 여긴 궁녀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자 왕의 간청을 물리치고 대장으로 임명한 두 후궁의 목을 베어 명령을 집행했고, 그 이후에는 궁녀들의 훈련에 기강이 잡혀 명령이 철저하게 지켜졌다는 이야기다.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지만 여기에는 간단하지 않은 신상필벌의 전제조건이 내포돼 있다. 잘못은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원칙이 그 사회에 서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잘못을 가리고 처벌을 시행하는 사람이 확고하게 제 역할을 해내야 하며, 마지막으로 최고 지도자가 예외 없이 원칙이 적용될 수 있게 보장을 해야 한다는 삼박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손자가 왕의 간청을 받아들여 한발 물러났거나, 왕이 측근을 절대 처벌할 수 없다며 손자의 처벌권을 박탈했다면 손자의 명령은 물론 손자에게 지휘권을 맡긴 왕의 명령도 영원히 지켜지지 않았을 터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느냐의 시금석은 현재의 불신을 폭발시킨 계기가 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조금의 잘못이라도 있는 당사자와 그 배후의 책임자까지 모두 찾아내 그 책임을 묻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간섭을 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됨은 당연하다. 이번에도 잘못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추궁당한다는 선례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시는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국민의 불신이 지금 정도에 이르렀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느냐 마느냐는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인기나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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