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경주 최부자와 거제 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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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지역사회부 서부경남지역본부

이름난 부자 상당수가 길어야 3대을 잇기 어려웠던데 반해 '경주 최부자'는 무려 12대, 300년 세월 동안 변함없는 부를 누렸다.

'흉년이 들면 사방 백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최부자 가문의 가르침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가진 것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 지금으로 치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조한 표현일게다.

경남 거제시의회 반대식 의장이 최근 이를 인용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경영진에 '뼈'있는 한마디를 남겨 화제다.

지난 24일 거제조선소를 깜짝 방문한 반 의장은 윤영호 거제조선소장과 가진 즉석 간담회 자리에서 "지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중공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 해 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사실 반 의장의 이날 방문은 지난 2월 시작된 그룹차원의 강도 높은 경영진단이 기약없이 계속되면서 지역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성난 민심을 감안한 이례적인 '액션'이었다.

시의회 의장이 행사 의전이 아닌 순수 실무협의 차원에서 지역의 대표 기업을 찾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경우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 거제에서는 현대, 대우와 함께 세계 조선업계 '빅 3'로 손꼽히며 지역경제를 견인해 온 삼성중공업이 지역경기 침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당초 2개월 정도로 예상됐던 경영진단이 5개월 넘게 장기화되면서 '대규모 감원설'과 '감원 명분을 찾는 감사반의 직원 비위 캐기'라는 등 출처불명의 소문들이 난무했다.

급기야 확대·재생산 된 소문들은 '삼성중공업 때문에 지역경기가 위축됐다'는 결론을 만들어 냈다. 고현동과 장평동 상권의 주요 고객인 거제조선소 직원들이 몸 사리기에 나섰고 소비가 급감하면서 경기가 얼어붙고 있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성이 있는 논리다.

삼성중공업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세월호 참사 여파의 연장선이라 항변하며 애써 부정하지만 지역여론은 삼성중공업에 낙인을 찍은지 오래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민의 대의기구인 시의회의 수장이자 25만 거제시민의 대표인 반 의장의 삼성중 방문은 사태의 심각성을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반 의장은 당시 "오늘 이 자리는 지역경제 위축을 해소하기 위해 진심을 전달하기 위한 자리다"며 "감사가 회사 고유의 권한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영진단이) 조기에 마무리 되도록 협조를 구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이제 삼성중공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진심어린 답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m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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